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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부인한 이유

베드로가 부인한 이유

 

 

 

 

 

 

 

베드로가 부인한 이유(18:15-18)

 

 

세상이 강해서 우리가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두려움이 세상의 힘보다 강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 적진의 가운데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적진의 가운데 들어갈 수록 주님을 사랑하는 같지만

떨칠 없는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베드로를 굴복시킨 것은 엄청난 폭력과 억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여종이 아닙니다.

여종을 통해 역사하는 두려움입니다.

 

 

베드로가 넘지 못한 것은 세상이 아니고 자신의 두려움입니다.

공포입니다.

세상의 힘에 대항해서 싸울 없고 죽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용기 있게 사랑해서 대제사장의 뜰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커서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쓰러지고 세상 앞에 무너지는 이유는 두려움입니다.

무서움입니다.

두려움은 세상의 실체와 힘이 나를 억누르지 않고 안에 주는 것입니다.

 

 

인생을 실패할 같은 두려움,

일을 그르칠 같은 공포,

일이 잘못되어 미래가 사라질 같은 무서움입니다.

 

 

절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공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억압하는 것은 실체로서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두려움을 사용합니다.

 

 

엘리야입니다.

850 일의 싸움에서 이긴 그가 겨우 신하의 한마디에 사십주야를 도망합니다.

두려움입니다.

 

 

인생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엘리야도 베드로도 죽음에 대한 인생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앞에 봉착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이야기는 인생의 문제와 죽음 부활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우는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엘리야보다 더한 사명이 있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을 가지 않고

예수님보다 더한 고통으로 십자가를 지는 사명입니다.

 

 

사명의 걸림돌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인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베드로는 오늘 두려움 때문에 한낱 여종의 말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무서워서 주를 사랑하는 고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힘의 실체를 보아기 때문에 주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 실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이 우리로 주를 부인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안에 문제입니다.

 

 

그래서 광야입니다.

광야는 시험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도 모세도 예수님도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무엇이 있다고 시험을 받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광야가 무슨 시험이 됩니까?

 

 

시험은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입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보고

두려움을 이기는 본질인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안의 두려움과 아픔과 슬픔과 인생 실패에 대한 무서움을 이기게 하기 위해 성령은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주시기 원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평안의 본질은 죽음을 이기는 마음입니다.

실패를 넘는 용기입니다.

죽음너머 주시는 부활의 소망입니다.

 

 

베드로가 받은 것은 성령을 통한 죽음에 대한 이기는 힘입니다.

힘이 없으니

능력이 없으니

세상에 지게 됩니다.

세상의 한낱 작은 말에도 전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합니다.

세상이 강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두려움이 강한 것입니다.

세상은 이미 그분의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무기인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니

부인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숨는 것입니다.

 

 

죄의 효력이 나타나는 증상은 두려움이고 두려움으로 우리는 자꾸 숨는 것입니다.

숨는 이유는 세상이 강해서가 아니라 나의 두려움이 너무 강해서입니다.

 

 

바울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후7:5]

 

 

세상이 다가올 안으로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증상은 다퉁입니다.

 

 

내가 사람들과 싸우는 이유는 두려움이 있어서입니다.

내가 불안해서 입니다.

내가 무서워서입니다.

 

 

<두려움> 다른 얼굴은 <다툼>입니다.

 

 

자꾸 싸우려는 사람의 본심은 내가 두렵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망할 같고

그렇게 하면 실패할 것같고

그렇게 하면 죽을 같으니 자꾸 다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7]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능력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절제입니다.

원어적으로 훈련입니다.

훈련이 필요한 것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세상이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다가온 여종은 반복적으로 세번이나 찾아옵니다.

그것에 세상입니다.

 

 

찾아오고

다가오는 세상을 향한

훈련,

두려움을 이기는 훈련,

힘의 실체가 세상이 아니라

안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먼저 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두려움을 이기는

세상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과 사랑과 훈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강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겁을 뿐입니다.

모든 문제는 안에 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그것이 주님이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세상은 주님이 상대합니다.

우리가 상대하려면 두렵습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입니다.

 

 

그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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