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문제의 답(요17:12-19)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코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본질상 함께 할 수 없고,
태생상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길을 가지만 하나는 멸망의 길을 가고 하나는 생명의 길을 갑니다.
우리가 잘 할 수록,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갈 수록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세상입니다.
세상은 세상에 속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귀신은 예수님이 찾아오자 본능적으로 알고 떠나시기를 구했습니다.
괴롭게 하지 마시기를 구했습니다.
그것이 안되자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탐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리, 하나님의 아들도 죽인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할 수록, 우리가 하나되면 될 수록 세상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핍박합니다.
핍박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본질상 하나님과 가까울 수록 당하는 의인의 고난, 의인의 핍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에 속하는 어리석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속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기도하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를 데려 가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고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구했습니다.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됨을 통해 세상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악에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의 모양은 다양하나 그 결과는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악에서 보전하기를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며 동일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6:13)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예수님이 하시는 기도는 같은 내용입니다.
악에서 구하시며 악에 빠지지 않기를 구하십니다.
악은 무엇입니까? 악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악의 궁극적인 모습은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고, 악에 빠지고 죄에 빠지면 나타나는 증상과 모습은
하나님과 분리되고 사람과 분리되며 하나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못한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악에 빠지지 않기를 구한 것은 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됨을 그렇게 강조하고 구한 것은 하나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결코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나됨입니다.
세상은 하나됨을 깨뜨리고 우리는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세상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싸움은 하나됨의 싸움입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결코 하나됨을 이루지 못하게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이 하나됨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이기심도 쓰고,
자존심도 쓰고
미움도 쓰고
능력도 쓰고
높음도 쓰고
아무것도 없는 빈 깡통도 씁니다.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데 필요하다면 뭐든지 사용합니다.
세상의 길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보아야합니다.
세상의 영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오직 하나됨을 향하여 나아가고
세상의 영은 이 기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데 전부를 사용합니다.
교회의 부흥이 하나됨을 깨는 길이면 교회의 부흥도 씁니다.
나의 축복이 하나됨을 깨는 길이면 당연히 나의 축복을 씁니다.
나의 물질이 하나됨을 깨는 길이면 당연히 나의 물질을 씁니다.
나의 능력, 나의 달란트가 하나됨을 깨는 길이면 당연히 나의 달란트 나의 능력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빠지지 않기를 분별해야 합니다.
악에 빠지지 않기를 구해야 합니다.
세상에 빠지고 악에 빠지는 근본은 하나됨을 깨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영의 마지막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속에 두 가지 병행이 쓰입니다.
하나됨과 세상에 빠짐입니다.
<하나됨>의 반대는
<세상에 빠짐>입니다.
그래서 계속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감사하고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그리고 세상에 빠지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기를 구합니다.
오직 하나됨이 이유입니다.
세상과 우리는 결코 같은 길을 갈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가고
세상은 우리의 하나됨을 깨기 위해서 갑니다.
거룩은 하나됨을 지키기 위한 방편입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9)
거룩의 목적은 하나됨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거룩은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됨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거룩의 목적이 나의 높아짐이나 나의 능력이나 나의 어떤 목적이면 반드시 거룩은 죄가 됩니다.
사단의 시작이 거룩이고 거룩이 높아짐의 방편으로 사용될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의 목적은 하나됨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세상의 영이 가장 쉽게 들어오는 방법은 거룩을 가장한 하나됨의 깨어짐입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예배 잘 드리고
섬기고 봉사 잘하고 희생 잘하는 사람의 방향이
하나됨이 아니라면 그곳에는 그 거룩함으로 더더욱 악한 죄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됨을 향하지 않는 모든 거룩과
신앙의 행위는 교회가 세상화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세상에 빠지지 않음과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신 것은
하나됨을 지키기 위한 예수님의 눈물의 소원이며 삶을 걸고 자신을 걸고 모든 것을 건 유일한 기도입니다.
하나됨을 지키려는 예수님과 하나됨을 깨려는 세상은 결코 같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깨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입니다.
성령도 하나되게 하는 영입니다.
그 영이 세상과 지금 싸움 중입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싸워야 하는 전쟁입니다.
세상의 영이 원하는 것!
분열입니다.
분열을 위해 비교를 사용합니다.
분열을 위해 한 사람의 슈퍼스타를 세웁니다.
분열을 위해 자존심도 사용합니다.
분열을 위해 기적도 이용합니다.
분열을 위해 불평도 이용합니다.
분열을 위해 감정도 이용하고 이성도 이용합니다.
세상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유일한 차이는 하나됨입니다.
세상의 전략을 알아야 우리의 전략을 세웁니다.
세상의 전략은 모든 것을 이용해 하나됨을 깨는 것이고
우리의 전략은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빠지는 것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됨이 깨어지고
교회가 하나됨이 깨어지고
형제와 형제가 하나됨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으로 산상수훈을 읽으면 왜 욕하는 자가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한 놈이라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다른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져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왜 예배를 드리다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왜 나를 고발한 자와 급히 화해하고 용서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핵심은 이 하나됨을 위한 기도합니다.
그 하나됨의 도구는 용서입니다.
용서가 하나됨을 이루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길은 용서입니다.
주기도문은 용서의 기도입니다.
하나됨을 위한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이룬 뜻
"하늘에서 뜻이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그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됨을 위해 용서의 길, 그길을 향한 삼위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용서의 삶 희생의 삶을 예수님이 사셨고
그 뜻을 이제 제자들이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용서 없는 하나됨은 없습니다.
용서는 하나된 자들이 먼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자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됨을 먼저 얻은 사람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서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하나됨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감격,
그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됨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르니 못 갑니다.
알지 못하니 못합니다.
내가 높아지려는 사람,
내가 특별해지려는 사람,
내가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은 결코
하나됨의 길,
하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못하지만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는 길,
하나됨을 이루는 길입니다.
세상의 길,
하나님의 길은 오직 하나를 두고 나뉩니다.
<하나됨>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결론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된 것 같이
저들도 하나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같이...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모범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유일한 모범은
나의 능력,
나의 힘,
나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됨입니다.
형제와
함께한 자들과 함께하는 하나됨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유일한 힘입니다.
사역에서 능력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됨에 전부를 거십시오.
예수님처럼!
예수님은 사역보다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에 전부를 거셨습니다.
그것이 능력의 비밀이고,
사역의 원동력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에서 부흥을 구하지 마시시오.
부흥은 우리의 하나됨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구원입니다.
부흥도 하나될 때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들은 하나됨으로 먼저 모였고
마음을 나누었고
그래서 가진 것을 통용했으며
내 것 네 것이 없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고 모이기를 힘썼고
떡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거기에 백성들의 칭송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 (행2:42-47)
기도의 방향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됨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하나됨의 열매를 낳아야합니다.
물질의 목적과 부는 하나됨을 위한 방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세상이 아는 유일한 방편은
우리가 한 마음,
하나됨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장과 발전한 사회와 교회에서의 타락은
하나되지 못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능력을 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 기도의 목적대로 물질을 내 놓고
마음을 내 놓고
자존심을 내놓고
음식을 내 놓으십시오.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나의 능력은 오직 하나되는 능력이 최고입니다.
여러분이 최고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높은 성에서 누리는 영광이 아니라
같이 함께한 사람 밑에서 섬기는 하나됨의 몸부림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됨은 기도가 같이 가야합니다.
그리고 물질을 내 놓고
함께 먹는 얼굴과 얼굴의 인격적 교제가 필요합니다.
필요를 따라 나누는 섬김이 필요하고
함께 드리는 경배가 필요합니다.
구원이 선물이듯
부흥도 선물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곳에 구원이 있듯
하나됨을 이루는 곳에 부흥이 있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부흥이지 나의 부흥이 아닙니다.
부흥이 시작되는 곳에
죄의 고백이 있고
그 죄의 고백으로 하나되는 성령이 있습니다.
하나되지 않는 곳은 세상이고
하나된 곳,
하나를 향한 추구함이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세상의 영!
하나됨을 깨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됨을 이루는 영입니다.
내가 하는 일,
하나되게 하는지
하나를 깨는지로 내가 세상에
아니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결정됩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삶의 방향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은
잘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소원하고 바라시는 유일한 소원!
하나됨이어야합니다.
세상은 그것을 깨고
성령은 오직 그것을 위합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하나됨입니다.
성령강림의 의미는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사역의 시작입니다.
내 안에 성령은 그 일을 하셨고
십자가를 그것을 확정하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
세상의 희망,
교회의 희망,
내 인생의 희망은
하나됨에 있습니다.
세상도 교회도 모두 문제만 지적합니다.
오늘 저는 문제의 답을 제시하려합니다.
그 답은 하나됨입니다.
함께하는 자들과 하나되십시오.
거기에 인생과 세상의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을 위해 예수님은 전부를 거셨습니다.
하나됨!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고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내 인생의 승패는
이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워터발 교회에 구역이 방문했습니다. 어제 사진입니다.
함께오신 최성호 집사님께서 사진관을 하시는데
오실때마다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어서 선물을 하십니다.
촬영전에 테스트로 저를 찍었습니다.
"여러분 저 어~떻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