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께서> 와 <부터>(요17:8-10)
예수님의 소유의 가치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소유의 가치의 근본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소유의 가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문제가 생길 때입니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분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나의 존재의 가치를 혼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는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서>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8)
하나님이 나를 보내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보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을 고백한다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와 '하나님으로부터'가 고백되지 않는 사람은 말 그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가치의 혼돈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의 고백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출발,
나의 시작,
나의 존재는 철저히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께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자녀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목적, 존재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보내신, 이 땅에 있게한 이유가 분명히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나 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왜 우리의 삶이 나 중심적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로>의 명확한 인식에서 시작하지 못합니다. 아니 인식은 하지만 인식이 고백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령을 받지 못한 제자의 차이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왜 보내셨는지 아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불렀는지를 아직 모른 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 <부터>와 <께로>의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명확한 하나님으로 부터와 하나님께로 왔음을 인식하는 시작이 성령이 임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꿈을 꾸고 환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로부터 왔다는 것, ~께로 왔다는 것은 이유와 목적과 방향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 의미를 제자들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 방황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예수님의 자기 삶의 정체성과 방향성과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 이전에 자신의 삶의 이유와 사역의 방향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서 기도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전부, 나에게 주신 사람은 다 하나님이 주셨다라는 고백을 하고 그것을 넘어 자기 자신 까지도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요? 왜 내가 하나님께로 왔고 하나님께서 보냈다는 것이 중요한가요? 이 세상의 시작은 자기 존재의 인식의 부재입니다. 아담의 죄의 시작은 이 하나님께로부터와 하나님께서의 인식의 부재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서려는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그 죄된 세상에 예수님이 지금 고백하는 기도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제자들이 알도록 의식적으로 제자들 앞에서 하고있는 것입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주신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하나님께로 부터 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고백하는 삶으로 순간 순간을 살 때 자기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미를 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내가 나의 삶을 살 때입니다. 내 삶이 내 것이라고 인식하고 살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우리 삶에 죄가 더욱 강하게 역사하는 순간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와 하나님께로 왔다는 의식이 희미해질 때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맘대로 살며, 내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갈려할 때 문제가 심각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내 뜻대로 삶이 되지 않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은혜는 내 삶이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고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허락하실 때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야곱, 이삭, 요셉, 다윗…
어느 한 사람도 자신의 삶이 자신의 뜻대로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 우리 인생에 의미가 부여해 지는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께서가 내 삶에 삶으로 고백 되어질 때부터입니다.
그래서 내 삶에도 <부터>와 <께서>가 고백되어져야합니다.
요셉의 참 가치는 형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할 때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팔리고 고생하고 감옥에 갇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고백을 할 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장면입니다. (창45)
우리의 인생에서 이 '부터'와 '께서'의 고백이 있어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참 일하심 속에 움직이게 됩니다. 고생의 시간, 아픔의 시간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 하나님으로 부터 이 일과 사람과 나의 존재가 있다는 고백이 되어질 때 우리의 삶은 진정한 기도와 진정한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이런 '부터'와 '께서'의 고백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눈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항복적 기도를 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강력한 섭리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의 가치는 이 '부터'와 '께서'의 의미를 발견할 때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살려는 죄의 무분별속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터'와 '께서'를 알았기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갈 수 있었고, 수준 미달의 제자들을 부를 수 있었고, 희생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기도에 이어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 희생하지 못하며, 왜 섬기지 못하며, 왜 예배적 삶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못하는가는 이 가기 존재의 시작과 끝인 '부터'와 '께서'의 의미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렸습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와 신비한 역사와 참 복음의 시작은 <여호와께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를 만날 때부터입니다. 우리는 자꾸 <나로부터>, <내가>로 인생을 세우려합니다.
그 일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일은 내가 했다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있는 자로 자신을 높이려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를 고백해야합니다. 하니님으로부터를 깨달아야합니다. 그것이 삶의 시작이고 참 인생을 아는 것입니다.
영적 참 여행은 내 존재가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세다운 모세의 시작은< 여호와께서>가 시작되는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출3:4)
모든 인류의 참 역사,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의 고백이 있는 곳입니다. 내 인생의 참 시작은 하나님께서 나를 있게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모든 일이 되었고 이 일이 이루어졌다라고 고백할 때 인생은 재미 있어집니다.
그렇게 고백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나를 여기에 있게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일이 시작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존재케 하셨다>
이 고백이면 충분합니다.
이 고백이 말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삶의 고백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이 짐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에게 잡으려는 욕심이 없습니다.
보내 셨기에 가야합니다.
보냈다는 고백은 가야할 곳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시작이 하나님이면 마침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의 참 고백은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 했습니다.
그 비밀이 <께서>와 <부터>입니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늘 짐이 무겁고
멍에가 어렵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살아야 해서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참 안식도, 평안도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의 비밀,
예수님의 기쁨의 비밀은
이 <부터>와
이 <께로>라는 고백적 삶입니다.
이런 고백이 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의적 영광은 없습니다.
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영광은 세상에 없습니다.
다 <께로>와 <부터>의 고백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
모두가 다 <아버지께서>와 <아버지로부터> 시작입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평안과 기쁨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존재인식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갑니다.
우리의 존재 인식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우리 고백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내 인생!
거기서 시작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사역하시다 한국으로 가시는 김영윤목사님부부입니다.
몇일 섬기며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감사한 시간입니다.
떼강도를 만난 후 8개월을 새벽 4시까지 깨어 살아야 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그곳 생활의 고초 속에
"숨이 쉬어집니다"라던 사모님의 말씀,
"아내가 힐링이 되어집니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참 잘 모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귀한 목사님부부를 알게되어 감사하고 함께 주의 길을 가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