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적 삶 고백적 삶(요17:6-7)
예수님이 이 땅에 살면서 가졌던 소유에 대한 가치관은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살면서 가졌던 사람에 대한 가치관은 한가지입니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7)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자기의 것입니다.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자신이 창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것, 세상의 사람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힘들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질도 내 것이고,
사람도 내 것이고,
내가 가진 전부가 내 것이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갈등이 많습니다.
아픔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다 내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천지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가 갈등하는 이유는 내 것이라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입니다.
내 것인데도 하나님 것이라 고백하는 예수님께는 소유에 대해 갈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다 내 것이라고
내가 이룬 것이라고
내가 만든 것이라고
내 것이라고 고집을 부려서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소유의식,
예수님의 물질관,
예수님의 세계관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입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신 그 말씀 자신이
세상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은도 내 것이고 금도 내 것이고 사람도 내 것이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거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인생의 회복은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순간이 아니라
<내 것>을 <네 것>으로 내어 놓을 때 이루어집니다.
부자청년이 내 것을 네 것으로 내 놓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예수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인식적 앎>에서 <고백적 앎>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평생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이 됩니다.
예수님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근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고백하며 사는 삶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택한 백성,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됩니다.
예수님은 인식적 앎이 아니라 고백적 앎을 원하십니다.
내 것에서 네 것으로의 소유권의 이전이 없는 삶.
믿음이 없다는 자기 증명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은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 사는 삶,
이 땅에 오신 삶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적 삶>이 아니라 <고백적 삶>입니다.
내 것에서 네 것이라는 고백적 삶이 없는 신앙,
근심만 더한 인생입니다.
인식하지 말고 고백하는 삶이 되기 바랍니다.
인식만 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동일하게 하십니다.
"네 가진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
고백이 있을 때 삭개오처럼 구원과 감격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인식만 있을 때 부자청년처럼 근심만 깊어갑니다.
교회 그리고 당신!
인식적 삶에서 고백적 삶으로 바꿀 때
근심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좋~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기쁨의 삶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