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자발적 확증(요17:1-5)
짧은 다섯 구절 안에서 영광이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의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모습입니까?
영광입니다.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내용이 기도의 시작에서 또 반복입니다.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영광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세상의 영이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으려 했고,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인해 그 영광이 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람이 잃은 하나님의 영광,
세상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진리가 되고 의가 되고 빛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유일하게 돌리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어떻게요?
첫째,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므로 영광을 얻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2)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므로 영생 얻은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에게 주신 하나님의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4)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생>입니다.
그 영생이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는 말을 전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부르고
하나님이 원하는 기적을 행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면 그 목적을 위해
말도,
행동도,
부르고,
가고,
서는 모든 것도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해야합니다.
그것이 영광입니다.
뜻이 하나님께 왔다면
과정도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작은 하나님이고
과정도 하나님이고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
참 생명,
영생은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슨 목적을 가지는지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고 어떻게 행하셨는지 알아야합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이 목적과 과정과 방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위해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드리는 영광은 영생입니다.
그 영생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예수님이 한 것은
그냥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고
보는 것을 전하고
내게 하라고 하는 것만 한 것!
그 관계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것
예수님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영생입니다.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하고 말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가졌던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으로 지금도 영광스럽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창세전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랍고 신비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영광을 지금 죄 많은 세상에서 다시 영광스럽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신비가 무엇이기에 죄된 세상에서 그렇게 간구하십니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 신비,
영광의 신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마음과 삶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했던 영광은 지금도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기꺼이 드리는 예수님의 마음과 삶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따르는 예수님의 삶이 바로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는,
기꺼이 드리는 <자발적 헌신>입니다.
<자발적 순종>입니다.
그것이 영광을 만들어 내는 샘의 근원입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의 원천은
자발적 헌신과 순종입니다.
영광을 위해 기꺼이 드리는 마음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가졌던 창세전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를 향한 자발적 헌신과 자발적 섬김을 통한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마지막 기도의 시작을 그 영광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창세전에 가졌던 그 영광의 회복,
자신의 사역과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는 자신의 영광까지도 기도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이 곧 자신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잘 아십니다.
자신의 영광의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
악한 영의 시작은 자신의 영광을 자신이 취하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자신의 영광을 자신이 취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 영광을 취하십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
아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두분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세우며 서로의 헌신으로 세워지는 영광, 그것이 창세전의 영광이며 영화입니다.
서로를 통한 영광입니다.
자신이 먼저가 아닙니다.
서로가 먼저 세워져야 자신이 세워지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의 영광을 자신이 구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입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제자들을 통해서 얻으십니다.
영광은 절대 스스로 취하지 않습니다.
영광은 서로가 채우는 것입니다.
죄의 시작,
세상의 타락의 시작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려 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 영광을 버리고
다른 이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문제,
관계의 문제,
신앙의 문제는 내 영광을 내가 스스로 취하려 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명령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이것이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빌2:5)
예수의 마음의 근원은 내 영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나의 영광의 추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추구가 되어야합니다.
아담도, 사단도 시작은 다 잘 했습니다.
사울왕도 시작은 좋습니다.
어디서 문제가 생깁니까?
내가 어느 정도 실력과 자리가 생기면 어김없이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리, 위치, 권세가 올 때 위험합니다. 여지없이 영광의 갈등이 찾아옵니다.
남이 아니라 나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나의 영광을 말하고 전하고 자랑합니다.
영광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책망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 자기의 영광을 구한 사람들입니다.
좀 부족해도 됩니다.
죄인이어도 됩니다.
세리여도 괜찮습니다.
없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광을 자신이 구하면 망합니다.
책망하십니다.
질책하십니다.
독사의 자식이라고 욕을 먹습니다.
독사의 자신은 곧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며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좀 덜 위험합니다.
그래서 별것 없는 사람은 이런 가장 무서운 죄는 짓지 않습니다.
누가 문제가 됩니까?
영광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칭찬을 들을 만한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영광의 박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위험합니다.
그들이 사람으로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영광을 가진다는 말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 노린 것은 하나님처럼 영광을 얻는 위치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서로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영광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내가 낫다라는 마음이 생기면
영광의 범죄자가 되어
사단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가장 무서운 죄이고
돌이키기 어려운 죄가 됩니다.
그래서 위치는 무섭습니다.
그래서 힘은 무섭습니다.
그래서 돈은 겁나는 것입니다.
자꾸 내려오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자꾸 힘을 분산하고 나누는 법을 익혀야합니다.
자꾸 돈을 나누어야합니다.
위치와 힘과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가 영광을 취하려 하는 것이 죄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하려는 것은 영광입니다.
창세전의 영광은 서로를 향한 자발적 헌신과 섬김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이 땅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영광을 나를 통해 이룬 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내 영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쁨을 구하고
다른 사람을 세움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예수님 스스로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분의 제자, 그분의 사람들을 통해서 받으십니다.
그 영광의 시작은
당신의 자발적 헌신과 섬김입니다.
서로의 발을 씻기를 것입니다.
서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서로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영광의 길,
서로를 세우는 <자발적 마음>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 자발적 마음의 확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