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는 법(요16:14-15)
삼위일체의 속성은 자신의 것을 자신이 말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상호 보완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말합니다.
허락하신 것으로 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 안에서 일하는 것이 그분들의 하나됨의 원리입니다.
사랑의 속성입니다.
아버지께 들은 것을 말하고 들은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속성도 오늘 예수님께서 정의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것으로 일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14-15)
예수님도 성령님도 어느 한 분 자신의 힘을 자신의 능력을 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철저히 상호 존중, 상호 보완, 상호 섬김의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일하심으로 영광을 거두십니다.
성령님은 철저히 예수님이 영광을 나타내며 예수님의 사역의 바탕에서 일하십니다.
그것이 삼위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그것이 자연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질서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세워지는 법이 하나님의 생존법입니다.
결코 <스스로>라는 질서의 법칙은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 여자는 남자를 통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자는 연약한 그릇입니다.
남자는 돕는 배필이 필요합니다.
그 질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철저히 스스로 살지 않고 상호 보완으로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혼자>라는 말,
<독처>라는 말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창조 이후 가장 좋지 못한 유일한 것이 <독처>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혼자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상호보완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든 것이 여자입니다.
여자의 이름은 <돕는 배필>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의 기초는 삼위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 인가요?
하나님의 속성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 속성은 절대 자기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 자신의 어떤 것으로 스스로 살지 않습니다.
주신 것으로 살고 주신 것을 통해 상호보완 즉 다른 이의 영광을 위해서,
다른 이를 세우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설교나 책이나 성경의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다짐을 할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바란다.
장성한 분량은 어떤 모습이 장성한 분량인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이 본문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도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말하고 있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한마디로 몸을 세우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로>이다.
그리스도의 충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의미는 삼위일체에서 나온 의미이다.
한마디로 자신으로 살지 않고 <서로>를 세우시는 하나님 속성의 충만이다.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직분을 주셔서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 교사로 세우신 것을 설명하면서 이 장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서로를 세우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것이다.
서로를 세우지 않는 것은 믿음이 세계에 들어와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처럼 된다는 것은 능력의 충만, 권능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이고 하나님의 분량이다.
예수님의 장성은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서로>를 향한 충만이다.
하나님이 사시는 법은
<서로를 향한 충만>이다.
하나님의 사역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탁하여 위임하셨고,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모든 뜻안에서 완전한 사역을 이루셨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에수님께 주셨다.
예수님은 다시 자신의 모든 사역의 결과를 성령께 주셨다.
성령은 예수님의 것으로 일하시고 인도하신다.
근심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위로가 뭔가?
예수님이 아버지게 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신 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는 것이다.
성령을 보내신 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대안이다.
우리를 위한 위로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성령을 향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서로를 향한 절대적 충만은 예수님의 사는 법이고 하나님이 사는 법이며 성령께서 사는 법이다.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이며 그분의 일이다. (요4:34)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는 법을 알지 못하고 또 그렇게 살지 않으면
가지를 제하신 다는 주의 음성이 경고로 들려야한다.
그러나 뭘 잘 알지 못해도, 많은 능력이 없다고 느껴도,
많은 힘과 높은 자리에 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로를 향한 충만한 삶으로 서 있다면
그 사람은 삼위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것이요 하나님의 사는 법으로 사는 것이며,
가장 하늘나라의 한 가운데 사는 것이기에 위로로 살아야한다.
죄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뭔가?
가장 살기 어려운 삶의 모습이 뭔가?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신다.
<서로를 향한 충만> 하나님이 사는 법이다.
우리가 살아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셔야만 하고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삶.
서로를 향한 충만, 하나님이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