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요16:7-14)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유익한 일이라고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옆에 있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이 예수님이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혜사가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옆에 있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이 예수님이 떠나고 성령이 오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가야 보혜사가 오시기에 예수님은 떠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7)
예수님이 곁에 계신 것보다 유익한 것이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이 예수님이 곁에 있는 것보다 더 유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유익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성령과 교제하고 성령과 말하고 성령과 교통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말하며,
예수님께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는 것 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한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과 함께하는 도우시는 영입니다. 그래서 보혜사입니다.
카운셀러가 되시고 하나님의 호흡으로 우리 안에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호흡하시고 숨쉬시고 창세 때 가졌던 생기,
즉 우리와 호흡을 회복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께 인도하며 진리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교정하여 주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8)
죄에 대하여 성령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무엇을 책망하시고 교정하여 주십니까?
첫째, 죄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그 책망의 의미는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책망하십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
죄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믿지 않음입니다.
믿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음이 죄라는 것을 밝히시고 교정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믿음 없음이 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 치료의 기초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모든 기적과 말씀의 의도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인간의 죄의 바탕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의 대상이 나냐 예수님이냐 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나 세상의 돈과 권력과 높아짐을 믿는
모든 것을 교정하고 바르게 인도하시는 영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
즉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그 믿음으로 우리를 교정하여 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는 곳에는 죄 즉 믿음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방언도 하고 은사도 받고 능력도 받았는데 믿음이 회복되지 않고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가짜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은 반드시 믿음의 회복이 일어나며 믿음은 소망의 길을 따라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을 확인하셨고 소망을 지나 사랑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인간의 근본 죄인 믿음이 해결되고
믿음이 해결 된 곳에는 반드시 열매 즉 사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공동체,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성도,
사랑하지 않는 우리 모두는 아직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것을 내려놓고 내가 믿는 어떤 것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믿음이 있음의 증명은 하나님 사랑, 서로 사랑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죄를 책망하십니다. 그 죄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증명은 사랑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세상을 책망하는 유일한 한가지는 믿음 없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그것입니다.
믿음이 모든 세상의 시작입니다.
둘째, 의에 대하여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8)
무엇이 의입니까? 의는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이 의입니다.
어떤 세상의 도덕과 열심과 수고도 하나님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십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5)
유일하게 죽음과 부활을 넘어 하나님께 가는 것이 <의>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야합니다.
사람들도 제자들도 왜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죽지 못하게 했고 사단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오직 유일한 <의>되신 예수님을 의가 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므로 세상에 의의 길을 여시고 그 길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길을 여시는 분과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다릅니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연합이며 섬김입니다.
삼위일체의 근본은 믿음이고 그 믿음의 뿌리 위에 서로를 섬기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서로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4)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고,
성령님은 자신의 것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구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닌 <다른>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이유는간단합니다. <다른>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른>을 다른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으로 인식 할 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벗어도 부끄럽지 않았을까요?
왜 죄를 짓고 서로 부끄러워 했을까요?
<다른>과 <자신>의 인식입니다.
죄의 본성은 비교라 했습니다.
비교의 본성은 <다른>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 아담은 하와가 자신이었습니다.
둘이었으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니 서로 다른 것을 알게되고 비교가 되고
그래서 서로가 다른이 되어서 서로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근본은 하나로 인식하는 <자신>입니다.
<하나>에 대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특별히 요한 복음에서 철저히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을 <자신>으로 인식할 때 하나되고 서로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회복되야하는 것은 다른에서 자신으로의 의식의 변화입니다.
교회가 하나입니다. 그것이 인식되고 알게 될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 믿음의 공동체는 다른에서 자신으로의 인식의 변화입니다.
의가 되신 예수님은 철저히 이 다른을 자신으로 인식하는 삼위일체적 하나됨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부가, 교회가, 공동체가 다른이 아닌 <자신>으로 인식될 때 나타나는 결론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는 다른 이들의 영광입니다.
자신으로 인식하는 증명은 자신의 영광이냐 다른 이들의 영광이냐 입니다.
부부가 교회가 공동체가 다른 이들의 영광을 구하고 그들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섬김과 희생과 사랑의 삶이 있느냐로 하나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됨이 없는 곳에는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의 완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갈 뿐 아니라 성령이 오시는 것까지 입니다.
그것이 의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만 내고 그 길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의는 명분일 뿐 실상이 되지 못합니다.
의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의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이 오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얼마나 아십니까? 성령과 얼마나 동행하십니까?
성령께서 말하시고 그것을 듣고 깨닫는 은혜가 날마다 있어질 때 우리는 진리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성령은 그것을 알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셋째, 심판에 대하여 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1)
성령이 오시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을 증명하십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믿지 않음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없음,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므로 주님이 오셔서 믿지 않음으로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그것을 확증하십니다. 이미 믿지 않는 자와 믿는자로 나뉘어집니다. 그것이 이미 심판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예수의 이름이 이미 심판의 근거입니다.
믿음으로 나아오면 구원이지만 믿지 않음이 이미 심판입니다.
세상 임금이 예수님의 이름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그것을 확증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최종적인 사역이 뭘까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궁극적인 일이 무엇일까요?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4)
예수님의 궁극적 사역의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이라 했습니다.
성령님의 궁극적 사역의 방향은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의 방향성입니다.
성령으로 사는 우리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영광입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궁극적 목적이 우리의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오직 영광,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모든 것은 성령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영광으로 남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드렸고
하나님은 모든 권세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모든 사역을 성령님께 드렸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디입니까?
영광이 아닌 모든 것은 가짜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영광은 자신의 죽음입니다.
한알의 밀이 떨어져 죽어야 그것이 인자의 영광이라 했습니다. (요12:23)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요13:32)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얻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우리의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그 이름으로 우리가 얻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기도는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얼마나 이 기도가 영광스러운지 하나님은 그 이름 때문에 기도에 응답하시고 영광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둘째, 과실입니다. 열매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열매 즉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입니다.
서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일등하고, 금메달을 따고, 지위가 높은 총리가 되고 왕이 되어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것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열매 맺어 그 열매가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영광스런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 안에 죽으셨기 때문이고
그것이 사랑의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 죽음이 있고,
희생이 있고,
섬김이 있고,
<다른>이
<자신>이 되어
<하나>가 되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영광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 영광의 길이 사랑입니다.
삼위일체적 삶은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직 그것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구하던 것을 멈추십시오.
달려가던 것을 멈추십시오.
그 끝이 혹 자기의 영광 아닙니까?
하나님께 영광은 서로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성령은 오직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치유도,
능력도,
깨닫고 듣는 모든 것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