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요16:4-7)
주님이 떠나야 주님이 오십니다. 예수님이 내 곁을 떠나야 예수님이 영원히 내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간다니 어디 가는지 묻지도 못하고 근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5-6)
떠나야 오십니다. 떠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떠나는 것이 두렵고 주님은 떠나려하십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곁을 떠나야 안에 영원히 거합니다. 우리는 곁에 머물라하고 주님은 떠나야 영원히 거하는 길을 가려합니다.
우리는 자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주님의 임재를 묶어 두려합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주님이 있어야합니다. 그 것이 죄의 속성을 가진 사람,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최고의 것은 성전입니다. 사람이 보이는 화려하고 높고 찬란해 보이는 성전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성전입니다. 곧 무너질 성전입니다.
곁에 머물리게 하려는 사람들, 눈에 보이게 주님을 곁에 머물리게 하려는 사람들 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눈이 보이게 주님을 섬기려 하고 눈에 보이게 세상에서 화려한 성전을 만들게 됩니다.
사람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한계를 주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떠나야합니다. 떠나야 이 땅에 생기게 될 또 다른 성전, 또 다른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모세의 무덤을 남기지 않고 법괘를 남기지 않고 이 땅의 성전을 없이 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입니다.
주님이 떠나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 사라져야 합니다. 이 땅에 없어야 참 성전, 참 영원이 내 안에 오십니다. 그래서 떠나야합니다. 이 땅에 의는 주님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참 의는 주님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0)
십자가의 완성은 죽으시고 부활하여 완전히 하나님께 가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완전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주님, 곁에 머무는 주님이 우리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한계입니다. 사람의 속성, 죄의 속성을 주님이 알기에 하나님의 하나님의 법을 이루십니다. 주님이 떠나고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 세상의 권세, 세상의 높음, 세상의 우상, 세상으로 흐를 모든 길을 차단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성전을 허물어지도록 그냥 버려두신 이유입니다.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한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의 약점, 사람의 죄의 습성, 사람의 한계를 주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곁이 아니라 안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가 아니라 영, 영원으로 우리 안에 오십니다. 성령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눈에 보이게 주님을 곁에 머물려는 사람의 한계를, 이 땅에 뭔가를 붙들려는 사람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떠나고 성령이 오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야합니다.
자꾸 곁에 머물게 하려는 , 자꾸 세상의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우리의 법을 버려야합니다. 화려한 성전, 높은 성전, 세상의 길을 따르려는 사람의 속성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또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은 신약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예수님을 곁에 머물게 하려던 제자들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주님이 떠나야합니다. 떠나야 영원으로 우리 안에 머물게 하려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의 약함을 넘어야 영원이 됩니다. 곁에 머물게 하려는 사람의 죄의 속성, 그래서 자꾸 세상적으로 살려는 우리의 본성을 내려야합니다.
이 땅에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길을 끊는 것입니다. 곁에가 아니라 안에 머물게 하려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길을 없앤 하나님의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방법과 높아지려하며 세상의 힘을 가지려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법, 성령입니다. 주님이 떠나야 하는 법과 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는 오직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는 오직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힘의 근거, 능력의 근거, 높아짐의 근거를 좇는 사람의 길을 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육체도 죽고, 세상의 길도 끊었습니다.
우리는 자꾸 주님을 곁에 머물게 하려합니다. 근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길, 세상의 높아짐의 길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외롭기 때문에, 더 높아지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곁에 머물게 하려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의 근심, 나의 세상에서의 외로움, 두려움을 채우기 위해서 주님을 곁에 머물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입니다. 그래서 보혜사입니다. 곁에가 아니라 안에 머물게 하려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성전을 허물고 성전 되는 주님의 육체가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곁에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유입니다.
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육체가 아니라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는 육체가 아닙니다. 세상의 길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완전한 부활, 육체의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영원으로 거하십니다.
곁에 머물게 하지 마십시오. 안에 머물게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를 이루는 길입니다.
죄의 씨는 곁에 머물게 하려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세상적인 끈, 세상적인 길을 열어 놓으려는 사람의 본성이 죄의 씨입니다. 그 씨를 아예 끊는 것이 주님의 의입니다.
세상을 향하려는 우리,
주님까지도 곁에 머물게 하면서 얻고 쌓으려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길을 버려야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영이 우리를 이용해 빼앗으려는 하나님의 나라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와 신비는 곁에가 아니라 성령의 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길, 성령의 신비를 알지 못하니 성령으로 오신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육체까지도 이 땅에 머물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신비를 오늘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