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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16:1- 3)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세상에서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것은 나를 믿기 때문에 너희를 출교하고 나를 믿기 때문에 너희를 죽일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출교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2)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예수를 믿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고 육신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도,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도,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도마와 빌립과 유다에게 말한 것도,

그리고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내가 속한 곳에서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육체적으로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모든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16 1절에서 설명하십니다.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1)

 

 

 

시작이 다릅니다. 시작이 되고 높아지고 형편이 나아지고 세상에서 어떤 것을 보장 받기 위해서라면 실족한 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면 반드시 실족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수록 더더욱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예수를 믿고 따른 일이기에 미리 말을 하는 것은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하케 하고 실족당 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실족케하고 실족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3)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는 모든 것은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매도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비록 제자들이라고하지만 실족하게 됩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부류 모두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실족>입니다.

 

 

우리가 실족케 하고 실족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믿게 하시는 이유가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육신적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출교이고 죽음이어도 그분이 원하는 십자가, 그분이 원하는 핍박, 그분이 원하는 어떤 곳이든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장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 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실족치 말라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예수를 믿기에 되는 삶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서 죽고 버림받는 삶인 것을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아니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열두 제자 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는 일입니다. 아시니까? 초대교회부터 과거 동안 죽은 사람보다  지금부터 과거 안에 예수를 믿기 위해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요.  선교학자의 이야기 입니다.

 

 

시간이 수록 예수를 믿는 것은 어떤 것을 보장 받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잘되고 세상적으로 높아지고 세상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일을 생각했다면 실족한다는 것입니다.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걸려 자빠진다는 것입니다. 절대 이해할 없는 일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장을 들여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실족치 않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치 않게 하려 함이니' 입니다.

 

 

우리가 실족하는 이유는 세상적으로 사회적으로 육신적으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어떤 것을 보장 받고 예수믿는 대가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를 주신 보장은 세상적으로 없습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의 평안, 평안을 주신다 했습니다. 그래서 하신 것이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평안과 사랑>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의 어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상입니다. 이것으로 넉넉하다고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고백 하는 사람들이 실족치 않을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보혜사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으로 실족의 삶을 넘어설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버림과 세상의 핍박을 이기는 것입니다. 버림도 없고 핍박도 없으니 성령을 절대적을 붙들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내가 위로 받고 채우는 것이 있으니 평안이나 사랑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니어도 돈으로 관계로 사회적 위치로 나를 채울 있으니 성령의 음성, 성령의 깨우치심, 성령의 위로하심이 별로 소중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사회적으로 육신적으로 보장 받는 것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슬로건의 기초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족하는 것은 사람들이 행하는 삶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는데 서로 미워하고, 세상적으로 더욱 높아지려하고,  예수를 바르게 믿으려는 사람을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목자가 그럴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장로가 권사가 그럴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럴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말씀을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니 그렇습니다. 모르면 매장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살면 실족하는 일이 생기고 나도 실족할 것입니다. 이유는 내가 믿는 목적과 예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이 달라서 일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되는 것을 기대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열매,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목적을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실족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버림 받지 않는 것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하게 하고 사랑의 열매는 맺는 것입니다. 누구나 있고 어린 아이도 있는 , 사랑입니다.

 

 

실족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당연히 실족케하고 실족 당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세상적이며 육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마음의 기쁨,

마음의 평안

사랑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세상과 다른 ,

마음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