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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안에>

 

 

 

 

 

 

 

 

 

 

 

<안에> (15:1- 27)

 

 

 

우리의 본성은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죄의 본성은 자꾸 안에 머물지 않고 밖에 머물려 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에덴동산 안에 언약 안에 은혜 안에 하나님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입니다.

그것이 우리와 하나님이 다른 차이입니다.

 

 

 

우리는 안이 아니라 자꾸 밖을 기웃거립니다.

안에 소망이 없음을 알기에 자꾸 밖을 기웃거립니다.

밖에서 소망을 발견하고 싶고, 밖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고,

밖에서 나의 존재 목적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자꾸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세상 속에 나의 꿈을 이룰 뭔가가 있는 것처럼 자꾸 세상을 향해 가고 싶어합니다.

집을 나간 둘째아들이 그랬고, 아담이 그랬고 밖을 뛰쳐 나가는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생명의 신비는 <안에>입니다.  하나님 안에 계신 말씀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입니다.  모든 생명은 안에 있을 입니다.

언약 안에 있을 그것은 법이 아니라 생명이 됩니다.

말씀 그리스도가 안에 있을 그것이 생명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생명의 근원이 안에 없는데 자꾸 열매를 맺으려합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생명은 <안에>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말씀이 하나님 안에 계셨습니다.

말씀이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만물이 하나도 말씀 없이 되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데 말씀이 하나님 안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유일하게 유지하신 한가지는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더욱 강하게 <안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안에라는 의미를 사도 바울이 이어받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 안에 계신 것을 강조하는지 곳곳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에 계신 말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증언하고 

6 10 그리고 예수님의 자기 증언과 기도인 14장에서 17장까지 예수님 스스로

<안에>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이 유일한 생명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증언하시고 하나님도 자신 안에 있음을 증어하십니다.

연합의 비밀이 생명임을 아셨습니다.

'아무도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느니라'[요15:5]라고 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열매를 의미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맺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에 머물라 하십니다.

성전에 머물라 하십니다.

그런데 성전을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성전이 되고 우리가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에 머물라 하십니다.

주님이 성전인 안에 오시고 우리가 성전인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밖으로 나가니 자신이 친히 안에 머무는 법을 보이셨습니다.

 

 

 

<> 아니라 <> 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밖이 아니라 안이 어야 합니다.

안에 계신 생명입니다. 죄가 강할 수록 안이 아니라 밖의 문제에 자신을 던집니다.

안의 생명이 아니라 밖의 문제에 모든 관심을 집중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합니다. 안에 생명을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밖에 세상, 밖에 사람, 밖의 것들과 호흡하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풍성함 열매의 풍성함을 얻지 못하는 같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안의 생명되신 하나님 안에 철저히 머물러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처럼, 자신이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이 자신 안에 계심 같이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철저히 바라셨습니다.

열매는 생명이 맺습니다. 우리는 자꾸 생명을 던져버리고 스스로 뭔가를 하려 고합니다.

래서 열매가 없습니다.

생명이 아니라 나의 열매를 좇는 이유는 자신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에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믿으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안에 생명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믿으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의 유혹입니다.

믿~습니다라고 외치면서 내가 어떤 능력을 받고 힘을 가지고 권능을 가지고 어떤 열매를 스스로 맺어

영광을 돌리는 것을 꿈꿉니다. 아닙니다.

내가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안에 생명이 머물게 하고 생명이 원하는 대로 가기 위해

나의 욕심과 나의 뜻과 나의 힘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 풍성하게 머물게 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의 하나됨의 모범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 자신과 연합하여 안에 머무르라 하십니다.

 

<> 아니라 <> 머무르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안에 그분이 있고 그분 안에 내가 있는 생명의 신비가 날마다 살아나야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도대체 <안에> 거한다는 말이,

도대체 <안에> 있는 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첫째, 희생입니다.

 

안에 머문다는 것은 희생을 통한 존재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안에 거하라고 하신 첫번째 말씀이 6 56절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6:56)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머문다는 것입니다.

말은 안에 거한 다는 원리를 제공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의 희생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희생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의 희생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우리가 님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비결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하게 됩니까?

주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하게 됩니까?

주님의 희생 죽으심과 보혈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합니다.

 

 

 

우리는요?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나의 희생을 통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킨다 했습니다.

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주님의 희생은 한마디로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희생>없는 <안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은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희생의 의미는

 

<사랑>입니다. 

 

 

사랑, 희생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려는 것으로 착각해서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노력하고 일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먼저 오셨고 안에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직 따름입니다.

안의 성령은 따름을 위해 말씀하시고 부르십니다.

음성에 따름이 희생으로, 사랑으로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희생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하여 안의 성령의 음성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생각, 계획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희생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뜻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과 말씀을 철저히 따른 삶이 우리를 위한 희생과 사랑의 열매를 나타나는 것입니다.

 

 

 

안에 거하시는지 생각 해야합니다.

성전이 안이 되었는지, 그리스도가 안에 거하시는지 생각 해야합니다.

희생과 사랑은 오직 따를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둘째, 그래서 성령입니다.

 

 

안에 거한다는 의미는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명령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나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에 근거한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성령의 음성을 따른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방향을 정해 주셨습니다.

거짓선지자처럼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방향을 정해 주셨다 했습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서로 사랑입니다.

 

 

 

 

성령의 방향은 사랑으로 흘러가야합니다.

성령의 방향이 자신으로 흘러가고 성령의 방향이 분열로 흘러가고

성령의 방향이 높아짐으로 흘러가는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은혜로 시작했다 죄로 마치는 이유가 성령의 방향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방향을 좇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성령을 보내시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듣고 따를 있도록 성령을 안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바로 예수님의 존재가 됩니다.

성령이 계신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니 안에 계신 성령은 예수님입니다.

 

 

 

예수의 영이 안에 있고 내가 그분 안에 있을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령의 길을 따른 것입니다.

성령이 안에 오신 이유입니다. 

삼위일체의 본질은 희생입니다. 서로를 위한 철저한 사랑과 희생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예수님은 아버지를, 성령은 예수님을 철저히 세우는 분입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희생이고 섬김이고 사랑입니다.

 

 

 

희생위에 사랑이 세워집니다.

사랑안에 머무는 것이 <안에>거하는 비결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희생으로 이끌고 갑니다.

사랑으로 인도합니다.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는데 희생한것이 남지 않고 사랑한 것이 남지 않는다면

우리는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생활처럼 밖에 머무르기 좋은 곳이 없습니다.

가장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희생이 넘치며 사랑이 넘치는 곳인 교회가

잠시 한눈을 팔고 마음을 빼앗기면 금방 희생이 아니라 자랑이 되고,

사랑이 아니라 비교와 질투가 나오게 되며,

성령이 아니라 세상의 영을 좇게 됩니다. 

가장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지만 은혜가 많은 곳에 다시 죄가 많아지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희생과 사랑의 방향이 아닌 것은 결국 자기입니다.

그래서 희생과 사랑만이 <안에> 머물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 나라의 <안에 거하는 >입니다.

 

 

 

어떤 사람은 희생도 하고 사랑도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이 희생과 사랑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를 봅니다.

나이가 수록 그렇고 자리가 높아질 수록 그러며 업적이 많아질 수록 그렇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리며 좇던 사람이 순간에 세상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세상의 영이 한마디를 던지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밖으로 나오면 너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유혹이 너무나 강력해서 많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한마디에 무너집니다.

희생과 사랑의 방향은 결코 자신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과정은 주를 향하지만 결론에서 자신을 향하여 희생과 사랑의 공로를 돌리면

더욱 악한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가장 빠른 방법,

희생과 사랑의 방향이 <> 때입니다.

 

 

 

 

희생하는 길을 택하십시오.

사랑하는 길을 택하십시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나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아무것도 장담할 없는 길일 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곳에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희생과 사랑의 끝은 결국 십자가 였습니다.

십자가라는 말은 세상적으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길을 가야 하나님 <안에> 영원히 머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머무르는 길을 택했습니다.

잠시 잠깐의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 하셨습니다. 영원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셋째, 믿음입니다.

 

믿지 못하면 희생도 사랑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세우실 다시 높이실 것을 소망하며 끝까지 안에 머무르는

사랑의 희생이 있어야합니다.

희생은 이미 말씀 드린대로 성령의 음성에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있는 유일한 이유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라고 하신 주님입니다.

주님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세상에 증명 하셨습니다.

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희생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그렇게 하나님이 나를 전적으로 책임지시고

다시 이전보다 더욱 세우실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라고 믿는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포기하게 됩니다.

 

 

 

희생과 사랑의 뿌리는 철저히 믿음입니다.

믿으면 듣고 믿으면 따르게 됩니다.

믿지 못하니 희생하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니 사랑하지 못합니다.

믿는 것이 그분 안에 거하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믿어야 계명 서로 사랑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유일한 길은 서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영광 돌리는 법이 세상에서 일등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세계에서 오직 한명인 일등에게만 영광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로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8)

 

 

 

밖이 아니라 <안에 > 머무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정말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마음이 있다면

안에 머무는 법을 익혀야합니다.

세상의 처세술, 세상에서 사는 법이 아니라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성령 보혜사를 보내신 이유를 생각해야합니다.

안에 거하시는 이유를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서로 사랑 해야하는지 알아야합니다.

안에 거하는 법은

희생과 사랑입니다.

사랑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반복입니다.

성경은 자꾸 반복합니다.

너무 중요한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꾸 <안에> 반복하십니다.

 

왜냐하면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이 아닙니다.

 

오직 <안에>입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

우리의 사역,

우리의 땀이 밖이 아니라

<> 집중하고 따를 주님은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는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삶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평안>입니다.

 

 

 

 

 * 예수를 믿는 !

그네라는 성령에 자신의 전부를 맡기는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