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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기도 응답 받는 것!

100% 기도 응답 받는 것!

 

 

 

 

 

 

 

 

 

 

 

 

 

100% 기도 응답 받는 !  (15:1- 27)

 

 

 

가장 어려운 기도가 무엇인가? 사랑하게 달라는 기도이다.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어려운 것이 사랑하게 달라는 기도이다.

다른 기도는 되는데 나를 미워하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축복해 달라고 사람에게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좀처럼 쉽지 않다.

 

 

예수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능력을 얻는 것일까?

돌이 떡이 되게 하는 능력인가?

하늘에서 뛰어 내려 죽지 않는 일인가?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하는 것인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구한 가장 어려운 것은 용서이고 사랑이다. 오직 일을 위해서 오셨다.

 

 

능력이 없으신 분이 아니다. 힘이 없으신 분이 아니다.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죄지은 사람, 자신을 배신한 인간을 사랑하는 일을 위해 오셨고

사람들이 당한 죄의 대가를 자신이 당하기 위해 오셨다.

 

 

오직 사랑의 완성이다.

용서의 완성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용서이고 사랑이다.

뜻이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고 가르치셨고 직접 뜻을 이루셨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핵심은 용서이고 사랑이다.

 

 

우리의 기도가 무엇인가? 모두 관계성이 없는 기도이다.

무슨 말인가?

나와 관련된, 나의 뜻을 이루는, 나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가 대부분이지 않는가?

기도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16)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구원이 아니다. 구원은 과정이다.

구원이라는 과정을 통해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땅에 하나님의 ,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

 

뜻이 열매, 사랑이다.

 

 

 

100% 응답 받는 기도가 있다.

사랑이다.

 

사랑이 바탕이 되고 사랑을 위한 기도이다.

그것을 위해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사랑의 열매를 위해 우리의 기도를 이용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주셨다.

 

 

 

우리의 기도는 사랑에 바탕을 두어야한다. 

우리의 기도의 방향이 사랑의 열매에 두어야한다.

어떤 기도도 사랑을 향하지 않는 기도는 거짓 선지자들이 구하는 권능과 직책과 능력이 아니다.

오직 사랑을 채우는 기도,

사랑을 완성하는 기도이어야 한다.

 

 

 

무슨 기도를 하는가?

 

우리가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대부분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대부분이다.

자녀, 직장, 미래, 그리고 사역까지도 어떻게 보면 나의 뜻을 이루려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기도의 방향이 사랑이어야한다.

100% 구하는 것마다 무엇이든지 받는 기도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 사랑하기 위한 기도이다.

 

 

 

욥이다.

 

욥의 의인됨의 완성이 무엇인가? 욥의 의인됨의 완성은

자신을 질책하고 욕하고 비방하고 자신의 논리와 이성과 합리로 욥을 향하여

문제를 삼던 친구들을 위한 용서와 사랑의 제사가 그를 완전한 의인으로 세웠다.

 

 

사랑의 제사후에 하나님은 욥을 형편을 두배로 회복시켰다.

이상하게 욥기서 12절부터 욥의 재산을 정확한 숫자로 계수한다.

자녀가 명이며 소가 얼마며 양과 낙타와 나귀와 종이 얼만나 된다고 기록한다.

특이한 구조다.

사람을 소개하고 그의 재산부터 소개하는 특이한 구조가 욥기다.

 

 

 

그런데 욥기의 마지막이 어떻게 나오는가?

재산을 계수한다.

소가 얼마며 양이 얼마고 낙타가 얼마며 자녀가 명이고

그리고 없던 일장에는 없던 자녀들에 칭찬으로 끝을 맺는 것이 욥기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욥기가 구성이 되었는가?

욥의 축복의 근거, 다시 회복되는 욥의 복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을 욕하던 친구들을 향한 축복의 제사를 드린 후에 이루어진다.

욥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의 이전 소유의 갑절을 주셨다고 하신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10)

 

 

 

 

기도이다.

 

용서와 사랑의 기도이다.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하시고 복의 갑절을 허락하시는 근거는

나를 위한 축복의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사랑의 기도, 용서의 기도이다.

 

 

성경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기록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욥기의 핵심은 용서이고 사랑이다.

의인의 완성은 용서와 사랑의 기도이다.

기도에 하나님은 세상을 축복하시고 의인의 의인됨을 세상에 증명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16)

 

 

주님이 욥을 택하셨다.

욥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지 내가 주를 택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욥을 택한 이유는 마지막 용서와 사랑의 기도로 하나님의 택하심의 이유인 열매

사랑과 용서를 보이시기 위함이다.

주님이 우리를 택한 것은 우리의 사랑의 열매이다.

용서의 삶이다.

 

 

 

의인으로 삼은 목적은 우리로 의인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이다.

의인의 삶은 사랑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묻지 않고 열매를 물으신다.

사랑을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럼 가서 양을 사랑하라!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다.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100% 얻는 비결은 사랑이다.

사랑하면 사랑을 받는다.

랑을 받으면 구하는 것마다 얻게 되는 것이 영적인 법칙이다.

 

 

 

 

사느냐고 물으면

기도하느냐고 물으면

어디를 향해 가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해야 한다.

 

 

 

공부하고,

사업하고,

일하고,

사역하느냐고,

설교하느냐고,

흘리느냐고 묻는다면

 

<사랑>이라고 말해야 한다.

 

 

 

기도에 응답 받지 못하고

기도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빠진 기도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삶이 빠진 모든 우리의 땀과 수고는 거짓선지자의 그것과 똑같다.

 

 

사랑하는 일이라면 손해도 봐야한다.

사랑하는 일이라면 욕도 들어야한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가장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랑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아이보다 사랑하는 아이가 되게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우리의 사역이, 우리의 교회가 사랑하는 교회, 사랑의 흔적이 있는 사역이 되게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우리의 됨됨이가 잘하는 사람이기 보다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통해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일을 못했다고 책망하지는 않을 같다.

그런데 사랑하지 못했다면 쳐다도 보지 않으실 같다. 

기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랑 안에 머물게, 사랑하기 위한 기도의 제목으로 바뀌어야한다.

 

 

 

사랑하면 그들의 필요가 보인다.

사랑하면 그들의 부족이 보인다.

내가 책망하고 책잡고 욕할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섬겨야 ,

그들을 위해 나누어야 ,

그들을 위해 베풀어야 것이 보인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도에는 100% 응답하신다고 오늘 약속하신다.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구분하는 한가지 방법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아는 한가지 길은

 

그들의 필요가 보이는지

그들의 허물이 보이는지로 안다.

 

그들의 필요가 보이면 섬기기 위한 성령의 조명이다.

그들의 약점이 보이면 기도의 제목이다.

그들의 허물이 보이면 공격의 제목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사랑은 약함을 넘어야 온다.

사랑은 필요를 위해 기도할 온다.

기도가 뿌려지지 않은 토양에는 사랑이라는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다.

 

 

주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17)

 

 

 

기도는 사랑을 세우는 토양이다.

기도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옥토와 같다.

 

욥과 같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하나님은 그들이 아닌 나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신다.

 

사랑 만으로,

사랑의 기도만으로 충분한가?

욥을 보면 충분하다.

사랑의 기도만으로 하나님은 땅에서 우리가 누릴 모든 누림을 허락하신다.

 

 

그것이 영적인 신비다.

 

 

 

 

 

* 얼마전에 오기스에서 청년 컨퍼런스를 가졌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원을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모든 행사를 잘 이루어갑니다.

몇교회 청년들이 모여 아름다운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 내는 수준까지가 된다면 선교사로서 이보다 큰 보람이 없을것같습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