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질문3 (요14:1- 31) 유다의 질문
<왜 예수님 자신을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는가?>
예수님이 진리고 길이고 생명이면 세상에도 좀 알리고 드러내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우리만 알게 하고 세상에는 알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당신이 진짜 메시야라면 왜 우리에게만 당신을 알리냐는 것이다. 보기 좋게, 멋지게 한번 세상에 알려 보라는 것이다. 왜 세상에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2)
결론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자신을 보이신 다는 것이다. 왜 세상은 예수님이 보이지 않나? 왜 하나님을 보지 못하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 보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세상의 시작은 자신을 사랑해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신다. 예수님의 명령,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사람만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을 지킨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을 결코 나타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23)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24)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신다. 세상은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자신만 보이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 세상에는 자신을 감추시는 것이다. 너희에게는 허락이 되었고 저희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기억해야한다.
적어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했다. 육신이 약해서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들은 사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얼마나 세상적으로 잘 났느냐를 묻지 않으셨다. 그것은 시골 출신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없었던 단어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적어도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가?
하나님을 알고 싶은가?
사랑해야 한다.
세상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이유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다시 주신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 안에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겠다는< 다름 이름의 약속>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다는 말이고 그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왔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명령을 듣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인 법칙이고 진리이다.
세상이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세상에 하나님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믿지 못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법칙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 사랑하게 된다. 믿음의 뿌리를 통해 소망의 가지를 지나 사랑의 열매를 보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고 그 믿음을 보시고 모든 것을 행하신다. 그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말씀이 응답이 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신다. 그것이 세상에 내 놓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보여주시는 진리이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이다.
세상은 믿음을 버리고 떠난 세상의 영의 결과이다. 그 세상에 믿음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기적을 이용하시고 예언의 성취를 통해 증명하시고 병자도 죽은 자도 살리시는 기적을 보이셨다. 그리고 말씀의 응답도 보이셨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믿도록 길을 여셨다. 그런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 영광스러움을 알고도 하나님께 몸은 와있으나 마음이 없어 원망 듣는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하나님됨을 보이신다.
세상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사랑>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어도 자기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이 보이지 않던 이유는 자기를 사랑해서이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가?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이름으로 구하고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분을 보이신다.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세 명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인생이 던지는 참 진리를 향한 예수님의 답을 들 을 수 있었다.
<인생의 방법과 방향>,
<아버지를 보여 달라>,
<왜 자신을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는가?>
이 질문은 온 인류의 질문이며 방황하는 인간의 물음이다.
답을 주셨다.
<길이요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이 방법이다.
<하나님이 인생의 목적지요 방향>이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명령이다.
사랑하여 그 명령을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알게 된다.
자기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사랑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지만 설령 보인다 해도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다. 우리 안에 이 진리가 있다.
그래서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 했다.
두렵고 방황하는 그분의 사람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선물,
<평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