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질문2- 빌립의 질문 (요14:1- 31)
<하나님을 보여달라>
도마의 질문에 방법과 방향을 말해주니 이제는 그 방향의 끝인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빌립이 질문한다.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보고 가겠다. 보면 믿을테니 하나님을 보여 달라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
영원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육체가 된 사람에게 당연할 결과이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사람, 흙이다. 영원이 떠나면 사람은 흙, 육체이다. 사람은 육체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창6:3)
육체가 된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 보지 못한다. 그 하나님을 볼 수 없으니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의 근거가 없는 사람에게 영원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간구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보면 믿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립이 이 질문을 했고 부활 후 도마도 동일한 질문을 했다. 모든 인류의 질문,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호흡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래서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고 나를 보았다면 그도 보았다고 예수님은 빌립의 질문 전에 설명하셨다. 그러나 빌립은 눈으로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을 때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는 창문은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을 보는 유일한 눈은 예수님이다.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을 본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죽은 자를 살리진 예수님을 본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수 없는 말씀과 수 없는 가르침을 들어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못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믿으라고 하신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이것이 사람의 일이라만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이 사람의 말, 예수님이 행하는 일이 사람의 말이라고 믿기에 그 안에 계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지 못하니 예수님은 때가 되면 믿게 하기 위해서 이 말들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다 이루어져야 보이고 보여야 믿어진다. 믿는다고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믿어지는 것이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외쳐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보이면 믿어진다. 그때를 위해 예수님은 오늘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 살아계심의 증거- 예수님의 이름>
그래서 믿음을 가진 자들의 특징, 즉 하나님이 살아계심의 증거를 더해서 말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는 예수님의 이름이다. 이름의 능력, 이름의 힘, 이름의 권세가 나에게 있음을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의 증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으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해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고 하신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서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다. 이름의 권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13)
"내 이름으로"
그것이 비밀이다. 예수님의 하나님되심,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심의 증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응답하겠고 그것을 체험하고 경험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말하게 하셨고 일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이 명령 즉 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명령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응답하시고 더 나아가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영원토록 하나님되신 그분이 우리 마음에 거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명령)을 지키리라"(15)
이것이 명령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법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명령이 되었다. 선택이 아니다. 명령이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 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그 응답을 통해 예수님보더 더 큰 일을 할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는 예수님의 이름이다. 이름을 통한 응답이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이다. 우리의 힘이다.
<하나님 살아계심의 증거- 보혜사 성령>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곧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권세이다. 예수님의 권세야 말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왔고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께 중보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다른 증거는 예수님의 간구로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6)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의 이름의 응답을 말씀하셨고, 이제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하겠다고 하신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 완전히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며 완전한 하나됨, 함께함의 영원을 이룬다는 것이다.
성령이 오심이 바로 하나님이 이땅에 오시는 증거이다. 살아계심의 증거이다. 예수님이 진리고 길이고 생명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보게되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이시다.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성령> 그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을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세상에 답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방법과 방향, 그리고 그 방향의 목적인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가장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명령을 지킨다고 하셨다. 그 명령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이다.
보혜사 성령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26)
예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과 비밀을 이제 알겠는가? 이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런 이름인지.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구하지도 않았고 구해도 믿음으로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 예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