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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비밀

영원의 비밀

 

 

 

 

 

 

 

 

 

 

 

 

영원의 비밀(14:1- 31)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고 혼자 자신을 지키고 홀로 자기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아무도 나의 삶을 살아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오늘 제자들이 가진 고민은 그것이다. 시골 촌에서 예수님이라는 거대한 인물을 만나 평생 함께 것으로, 자신의 미래와 삶과 전부를 걸고 여지껏 달려 왔는데 이제 예수라는 분이 어디론가 간다고 하고 나를 따라 없다고 하고 죽는 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제자들에게 찾아온 마음은 두려움이다.

 

 

자신은 어디론가 죽으러 간다 하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한다 하시고 그리고 이제는 발을 씻어 주라 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서 그리고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부인한다고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느낀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그래서 이제 14자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 시키신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예수님은 너무 알고 계신다. 홀로 남겨질 제자들이 느낄 두려움의 마음과 평생 의지하고 따른 예수님이 없는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근심하지 말라고 두려움을 위로해 주신다. 예수님은 절대 나를 믿으라 하신다. 홀로 버려두지 않고 다시 와서 아버지의 집을 예비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2)

 

 

우리가 언제 두려워지는가? 언제 공포에 잠기는가? 믿고 달려온 길이 아니라고 느껴질 , 나름 믿음을 가지고 이것이 맞다고 열심히 달려 왔는데 길이 맞는지 길을 헤멜 , 길에 소명을 가지고 길이 하나님이 주신 뜻이 맞다고 열심히 달려 왔는데 길에 홀로 남겨진 마음이 그때 우리가 가지는 마음은 두려움이다. 아니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찾아온다.

 

 

이럴 때는 아무리 사람을 찾아가도, 아무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해도 마음의 두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진원지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의 상태, 나의 마음에 다시금  두려움이 생기게 근원을 되돌려 놓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믿으라 하시고, 땅이 아니라 땅에서의 전부를 보상할 당신께서 친히 다시 오시겠다 하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3)

 

 

두려움의 실체, 우리가 가지는 공포의 실체는 바로 하나님의 부재, 예수님의 부재이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고향은 감격이다. 기쁨의 흘러넘치는 상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하나님이 만드신 아내와 남편 하나님이 주신 에덴을 바라보는 것으로 누리는 감격, 그것이다.  그런데 기쁨의 생수의 근원인 에덴에서의 이들이 누리는 진정한 감격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잃고 찾아온 마음이 바로 두려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함께함의 대상으로 여길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에덴도 강이 발원하는 물의 근원이 되지만 하나님을 나의 비교의 대상으로 여기는 순간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함께함의 대상이지 인생의 목적의 대상이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오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인생의 목적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아직 예수님 자체가 인생의 기쁨의 근원이 되지 못하므로 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마음 상태를 예수님은 명확하게 아신다. 그래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며 다시 것이고 내가 너희들의 기쁨의 근원이 것이라 약속하시는 것이다.

 

 

임마누엘이다. 내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예수님은 지키기를 원하시고 약속의 절정인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16)

 

 

우리의 두려움이 무엇인가?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가? 인생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외로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임마누엘> 예수님을 보내실 약속하셨다 약속을 위해 구약의 성전, 지성소를 허무시고 마음을 지성소로 삼으셔서 성령하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영원토록 있게 하셨다.

 

 

성령을 다른 곳에 두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을 지성소로 만드셔서 성령께서 함께함으로 영원토록 나와 떨어질 없는 관계로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신비이다. 그것이 하늘의 영광이다.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지성소, 마음, 속에 영원으로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신 하나님은 영원에만 존재하시고 거하신다.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해 우리를 영원으로 만드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담기 위해 마음을 인치시고 지성소로 삼으셔서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영으로 성령께서 거하시는 것이다.

 

 

두려움, 외로움의 영원한 이별을 위해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기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질 없는 함께함의 영원성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약속으로 자신을 보증하시는 것이다.

 

 

오늘 141 절에서 두려움으로 시작하여  27 평안으로 마무리 하신다.

예수님은 인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없는 인생, 예수님이 없는 인생의 아픔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신다.  예수님을 떠난 인생에게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 약속하시고 오실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집에 거하도록 예비하시고 영원을 살기 위해 땅에서 영원의 동행자이신 성령을 우리 안에 먼저 살게 하시는 것이다.

 

 

영원을 살기 위해서는 영원의 몸이 되야하고 영원의 몸이 살기 위해서는 영원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야 하며 영원의 삶이 시작된 사람은 땅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집에 거하게 되는 하나님의 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야기를 알아 듣지 못한다. 도마도 빌립도 유다도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 어디를 가시며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질문하고 있는 상태만 보아도 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때가 되어 믿음을 위해, 예수님을 믿게하기 위해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29)

 

 

 

두려움의 본질은 나의 약함이 아니다. 두려움의 본질은 예수님의 부재이다. 하나님 만이 인생의 근본이요 시작이요 근원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없으면 흙이다. 속에 생령이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와야 두려움이 아니라 무서움이 아니라 외로움이 아니라 허전함이 아니라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생수, 사철 열두 달을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다. 흙은 흙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흙에 생기가  왔다, 생기는 호흡이고 호흡은 믿음이다. 인간 실존의 기초는 믿음이다. 믿음의 모체는 삼위일체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없는 유일한 한가지는 믿음이다. 믿음을 예수님께서 끊임 없이 설명하고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10,11,12,29,)

 

 

 

믿어야 보인다. 믿는 것은 호흡이다. 하나님과 날마다 호흡하는 사람만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고 믿음으로  마르지 않는 생수를 먹고, 믿음으로 영생을 누리며,  사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의 ,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 하나님의 길이 보여야한다.  하나님의 말과 길과 손과 빛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요, 하나님이 보이신 진리요 다시 호흡하여 영생을 얻는 생명이라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빼면 흙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길이, 생명이 진리가 예수님이다.  그래서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니면 하나님께 수도 수도 없은 자신을 하나님을 증거하고 보여주기 위하여 그토록 애를 쓰시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

 

 

 

인생이 자기 목적에 매여 있으면 절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분의 호흡을 느낄 없고 그분의 생명의 풍성을 없으며 다만 기적만 보이고 기적만 매력적으로 보일 뿐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상 하나님을 보여 달라 하지 않는다. 기적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 안에 생명의 기적, 태초의 생명이 있으므로 호흡을 통한 먹고 마심만 있는 것이다.

 

 

 

예수를 알면 하나님을 안다. 예수를 만나면 영생이 만져진다. 영생은 호흡이다. 들숨과 날숨을 통한 삶의 호흡이다. 그래서 듣고 보고 반응하고…

 

 

반응이다. 호흡은 반응이다. 세상에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호흡에 반응한다. 하나님께 자는 하나님과 호흡하고 세상에 자는 세상과 호흡한다. 호흡은 안에 넉넉함이다. 강이 발원하여 강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억지가 아니다.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이 호흡이다.

 

 

그래서 반응한다. 성령이 말하면 듣고, 말씀이 일하면 따라간다.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고 하나님만 보고간다. 그래서 평안이다. 세상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강이 하늘에서 날마다 내려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

 

 

이미 영원의 호흡에 들어간 사람은 평안의 호흡이 시작된다. 평안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그런 평안이 아니다. 하늘 위에서 하나님의 호흡으로 찾아오는 영원의 평강이다.

 

 

 

죽어도 좋을 만큼의  평강이  예수님께서 그렇게 주기 원하셨던 하늘의 평강이다. 우리의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다. 외로움이 아니다. 공포도 슬픔도 아니다.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주시기 원하셨던 것은 영원의 호흡으로 말미암는 <평강>이다.

 

 

사람들과 대화하면 평강의 건너편에 있다. 평강은 호흡하는 사람만 얻는 하늘의 영광의 열매이다. 평강을 아직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아픔이다. 찢어지는 민망한 예수님의 마음이 아픔이다.

 

 

빼앗길 없는 평강!

사람들이 이편으로 오면 좋겠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과 호흡하면 오직 평강이 남는다. 모르니 자꾸 흙을 판다. 흙은 나인데 나를 파야 하는데 세상을 판다. 거기는 두려움 뿐인데…

 

 

호흡이다.

생기이다.

믿음이다.

지성소는 세상이 아니라

마음이다.

 

 

임마누엘이다.

그것이 영원의 비밀이다.

 

 

 

 

 

 

* 묵은 사진 2탄입니다.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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