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시되 (요13:1- )
서로 상관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서로 관계가 있는 사람 서로 아는 사람 서로 연결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예수님은 오늘 몇 시간 후에 죽음을 맞이 하시기 전 그분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증표를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일입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종의 모습으로 하인들이나 하는 종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위치의 종들이 하는 발을 씻기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끝까지 사랑하심> 을 증명하십니다.
예수님의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무엇을 보여주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발을 씻기심의 참 의미가 무엇일까요?
떠날 때가 다 되심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가지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너무나 중요해서 하지 않으면 서로 상관이 없는 일이 될 정도로 그 의미가 깊은 이야기입니다. 서로를 상관 있게 하고 서로의 관계를 의미 있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맺어주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이 발을 씻는 일입니다.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5)
그런데 이 일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를 그렇게 하신 것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섬긴다 정도의 메시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어준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4)
예수님이 걱정 하신 것은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원한 것은 자신의 모범 즉 자신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듯이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5)
<본> 입니다.
원어적으로 견본을 말합니다. 그래도 보고 따를 수 있는 샘플입니다. 말 그대로 보고 따라 하는 근본입니다. 그 본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끝까지 사랑해서 뭔가 능력을 더 주는 것이 아닌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끝까지 사랑해서 하늘의 비밀을 설명하고 하늘의 영광을 미리 준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사랑해서 발을 씻기는 가장 더러운 수치와 가장 부끄러움을 감추는 일의 상징인 발 씻음의 모범, 견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가 너와 상관이 없다고 할 만큼 이 일은 서로의 관계를 맺어주는 가장 중요한 근본입니다. 발을 씻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상관이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발을, 우리의 가장 수치와 부끄러움과 약함을 씻어주고 덮어주고 감싸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서로가 상관이 있는 <관계의 근본>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하고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원하는 핵심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뭔가를 더 얻어 주고 더 많은 능력과 하늘의 어떤 신령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발을 씻는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는 것, 그것을 예수님은 그의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고 행해야 하는 본입니다.
허물을 덮고 약함을 덮고 부족함을 덮는 일이 없으면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제자들에게도 유다에게도 동일하게 대하십니다. 부인한 베드로에게 왜 잘못했느냐고 단 한번도 따진 적이 없습니다. 그냥 말없이 불을 피우시고 기다리시고 물고기를 구워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발을 씻기를 행위입니다.
발을 씻긴 다는 것은 불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기를 구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불과 고기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덮어주고 감싸는 것입니다. 그 씻음의 삶을 예수님이 한다는 의미와 그보다 더 제자들이 서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부인한 베드로를 향한 제자들의 용납과 덮음과 이해와 포용과 섬김입니다. 상식적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가장 강력하게 부인한 베드로를 함께한 제자들을 성경 어디에도 시비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약한 제자들을 향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자격을 제가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끝까지 사랑하심은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기는 성숙의 자리까지 입니다. 열심이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땀과 수고가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열심과 땀과 성과가 발을 씻기는 그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외치는 자는 있으나 발을 씻기는 자는 없습니다. 열심은 사람을 당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발을 씻기는 용납과 이해와 다시 세워주는 마음,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없습니다.
사랑의 본은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를 섬기고 사랑하고 우리의 허물과 약함을 씻으신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서로>입니다. 서로 끝까지 사랑하는 본으로서의 발 씻음이 될 때 교회는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상관이라는 원어는 한 부분을 의미합니다. 네가 나와 한 부분이 되는 것은 내가 너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내가 너의 허물과 약함과 더러움을 씻기지 않으면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깨끗한 발을 찾습니다 . 깨끗하고 정결하고 정직하고 순결한 사람만 찾습니다. 그래서 내가 발 씻음이 아니라 나의 발 씻음을 원합니다.
내가 발을 씻을 때 그 공동체는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발 씻음은 교회를 완벽하게 세우는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의 대안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은 하늘의 능력이 아닙니다. 나의 뛰어남이 아닙니다. 능력 있고 힘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그저 발을 씻기는 <끝까지>의 마음입니다.
우리 주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문제의 시작은 모두 이 발 씻기는 끝까지의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는 곳이 교회인데 서로 발을 씻겨 달라고 합니다. 나의 허물과 약함을 덮어 달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발, 다른 사람의 허물은 용서하지 못하고 들추어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롯 유다가 된 듯이 쳐다보고 상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마디 더 하십니다. 주와 선생이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옮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크지 못하니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
그것이 예수님이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원하시는 사랑의 대화입니다.
바로 <발 씻음>입니다.
발 씻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우리가 서로 발을 씻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이 끝까지 사랑하심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교회의 아픔은 이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을 증명해 내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은 이 끝까지 사랑하심을 나를 통해 이루지 못함에 있습니다. 어떤 큰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어떤 놀라운 업적으로 세상에 교회에 놀래키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의 현실적 완성을 이루는 일에 전부를 걸어야합니다. 교회는 이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끝까지 사랑하심의 현실적 완성에 대한 말씀은 교회론을 설파하는 바울의 기본 메뉴가 됩니다.
현대교회가 잃은 것은 이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을 증명해 내는 발 씻음의 현장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발을 씻어야 할 지체를 향한 실제적 씻음입니다. 교회는 나의 발 씻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사랑의 대화인 발 씻음으로 그 사랑을 완성하기 원하십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대접한다고 서로 상관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상관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 발 씻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교회와 상관이 없고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완성!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발 씻음입니다. 발을 씻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허물과 약함과 실수와 부족을 덮어주고 용납하는 발 씻음의 사랑의 언어가 없는 관계는 아무리 밥을 많이 먹고 같은 곳에서 함께 오래 지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혹 발을 씻어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발을 씻어주고 발을 닦아 주어야 할 나의 상관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외적으로는 상관 있게 지내 왔는데 발을 씻어주지 않음으로 영적으로 상관없는 사람은 없습니까? 발을 서로 씻지 않으면 결코 서로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비극입니다. 같은 교회 안에 같은 공동체 안에 같은 가족 안에 발 씻음이 없으므로 서로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일이 되고, 같은 수고를 하지만 서로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발 씻음!
그냥 발 씻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과 교회의 완성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것이 나의 손을 통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죽으시기 전에 바로 이 사랑의 완성, 끝까지 사랑하심을 제자들에게 원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발 씻을 씻음으로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 천국의 마음을 한번 느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발 씻음이 없으니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허전하고 늘 채워지지 않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도 하셨습니다. 주가 주인이 이 일을 했기에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행하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
여러분!
이것을 알고 행할 때 어떤 복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욥 입니다.
욥이 이 복을 누렸습니다.
발을 씻기는 행위로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 의로움의 완성을 증명해낸 사람이 욥 입니다. (욥은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한번 하지요)
욥과 같은 의로움과 하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을 증명해내는 것!
욕심나지 않으십니까?^^
건투를 빕니다.
서로 발을 씻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