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욕하라!
(사단의 전략)
사단이 노리는 것은 사단의 죄로 인해 파괴될 나의 영혼이다.
내가 큰 죄를 짓지 않아 안심하게 한다.
누가봐도 나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죄 지은 모습을 보고
심판하라고
정죄하라고
손가락질 하라고 미끼를 던진다.
잘못된 사람의 죄,
당연히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그들의 죄를 들춤으로
결국 내가 파괴되기를 원한다.
세상은 자꾸 세상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라고 한다.
욕하라 한다.
세상은 우리의 정죄,
우리의 판단,
우리의 심판적 손가락질을 원한다.
그래야 우리가 파괴된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평안이 깨어지는 것을 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지은 자를
당연히 돌로쳐도되는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를 살게한다.
평안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심판하고
들추어내고
잘못했다는 것을 지적해서 죄의 고백을 들을 때
승리로 인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심판과 정죄와 판단과 지적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에서 온다.
사단은 자신의 본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이전에는 사단은 자신을 숨겼지만,
이제는 자신을 드러낸다.
죄의 본성을 드러내고 죄인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가 흥분하게 하고
화내게 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당연한 상황이 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결국 그를 죄인으로 낙인 찍지만
함께 나도 죄인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이다.
죄인이 죄인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기정 사실이나
그로 인해 사단이 노리는 것은
나의 평안의 파괴로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꼼수로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평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도 너를 정죄치 않는다'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는 믿음 안에 머물기 원하는
예수님 스스로 평안을 만드는 기가 막힌 방법이고
사단의 세가지 시험을 통과하면서 가진
사단을 바라보는 놀라운 통찰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세상에게 져줄 수 있는 용서를 통한 평안이다.
맡기는 믿음이다.
그 평안은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평안을 지키시는 평안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을 우리 안에 지키는 방법은
세상을 향한 손가락질,
누가 봐도 잘못된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호소와 질책이 아니라
나도 저들과 같다는 겸손의 마음
주를 처음 만날 때 가졌던 죄인의 입장에서의 겸손이다.
그 첫 마음,
첫 용서의 마음이 사라지면
우리는 공감의 사람이 아니라
심판의 사람이 된다.
그것이 무서운 것은
심판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신데
사단은 내가 그 심판의 사람,
즉 하나님의 자리에 다시 앉도록 전략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사단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리이다.
나를 통해 사단은 그 자리를 늘 넘본다.
비록 내가 당연히 설 수 있는 심판의 자리라 할지라도
우리는 평안,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포기 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사단은 자신을 손가락질 하라고 한다.
사단은 죄지은 자를 향하여 욕하라고 한다.
사단은 용서 할 수 없는 자을 용서하지 말라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항변하라고 한다.
말은 맞고,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다 맞다.
그런데 그렇게 부은 내 마음에
평안도 함께 솟아 부은 것이다.
사단이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이성적 사고 속에 솟아 붙는 나의 평안이다.
결국 이성과 맞바꾼 하늘의 평안이다.
*어둠에서 승리를 기다리는 사단의 모습이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