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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행함 사이

말씀과 행함 사이

 

 

 

 

 

 

말씀과 행함 사이(10:22-42)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은 말로 판단을 하려니 그렇다.

사람은 말을 하고,

사람은 말을 하고

그들의 말을 가지고 판단을 하니 정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오늘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구한 것은 당신이 그리스도시면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한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24)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아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25)

 

 

말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상대방이 믿어 때이다.

그래서 말은 생명이고

말은 영이다.

영의 힘은 창세부터 믿음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이어도

말씀을 영으로 받지 않고

생명으로 받지 않는 믿음없음 안에서는  어떤 것도 할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원래 에덴동산은 그렇지 않았다.

에덴의 의미는 믿음이 통하는 곳이다.

 

,

말씀이 전해질 능력이 이루어지는 것은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서 그렇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힘은 바로 믿음이다.

삼위일체의 기본 관계는 믿음이다.

 

하나님 나라의 관계와 기초는 믿음인가?

땅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심판을 하시는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믿으라 하시는가?

 

율법이 아니고

이성이 아니고

능력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바탕을 바로 믿음으로 두셔서 그렇다.

 

그럼 믿음이 어디서 왔는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서로를 지탱하고 유지하고 관계하는 기본이 바로 믿음이다.

 

구원의,

영원의 기초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믿음이다.

그리고 믿음 위에 삼위일체의 행위적 관계인 사랑이다.

 

믿음과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와 행위적 기초이다.

그래서 ,

하나님 나라의 기본구성은 바로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의 관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 부분은 깊이 다음에 한번 다루기로 하자)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 나라의 유지는 믿음으로 이루어졌는데

믿음을 사단이 빼앗았다.

 

철저하게 노린 것은 바로 사람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파괴한 것이다.

사람에게 사단이 노리는 유일한 한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붙든 한가지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죄인 하나를 받으시는 것도 하나님이 보내셔서 받는 믿음 안에서 행하셨다.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증거를 보이신 삶이다.

 

 

그런데 없는 말씀을 하셔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것을 밝히 말하라 한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 말씀은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가 된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 땅에서 믿음 없는 자들에게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방법이

구약에서 예언한 기적들,

보지 못하는 자들이 보게 되며

말하지 못하는 자들이 말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통해 믿음을 더하신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11:5)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임을 말씀으로 증명해 달라는 자들에게

내가 행한 것을 보고 믿으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하심, 

삶을 통해서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25)

 

 

하나님은 말씀이고 영이시지만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는 행위이고 행위는 반드시 결과를 낳게 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삶이 되고 행위를 통해 열매를 보게 된다

그래서 삼위하나님이신 성령의 열매는 반드시 행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행함이라는 야고보서의 이야기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오늘 그리스도께서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 그냥 말씀만하지 않으시고

기적이라는,

그분의 삶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신다.

 

기적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어떤 것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해 주는 믿음의 방편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기적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결국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적은 어떤 우리의 불충분한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충만케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케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단계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기적을 원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증명하려는 의도가 있고

우리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기에

사단은 세상에서 자꾸 그런 방법으로 우리에게 접근한다.

예수님께 시험한 시험은 그런 배경을 가지게 된다.

 

 

오늘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25)

 

 

예수님의 철저한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셨다 .

믿음을 다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회복 되어야 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이다.

 

믿기 때문에 행하고

믿기 때문에 이루어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은 믿지 않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니 양이 아니어서 믿지 않는다고 하신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

 

 

믿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고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면 반드시 들리고

들리면 믿음으로 행하는 삶이 따른다.

 

오늘 예수님은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증명해보라는 말씀에

다른 이야기를 하신것이 아니다.

 

나와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30)

 

 

그리스도를 증명하라고 했더니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하시다.

그것이 예수님의 증명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는 자이지만

세상을 구원하는 기초는 하나님이어야 하고

사람으로 왔으나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함을 알기에

그리고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해야 하늘의 길이 열리는 것을 알기에

예수님이 세상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

말씀,

믿음의 삶이다.

 

 

그것이 그리스도,

세상에 보여주는 행위,

예수님의 모습이다.

 

 

세상은 믿음을 싫어한다.

세상이 빼앗으려는 유일한 한가지는

아담에게도서 그랬고

다윗에게서도 그랬고

많은 믿음의 선진들에게도 그랬듯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음,

믿음의 삶을 보여주자 돌로 치려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31)

 

예수님께서 다른 이야기를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나는 하나다.

믿음으로 하나이고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룬 것을 통해 내가 그리스도임을 보라 했다.

그것이 다인데

그들은 돌려 치려 했고

예수님은 잡고자 하나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나가셨다.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39)

 

 

 

우리는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의 하나님되심과,

세상의 그리스도되심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선한 일을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32)

 

 

아버지로 말미암아이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과이다.

 

세상이 돌로치고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세상의 영이 빼앗은 믿음,

세상의 영이 싫어하는

하나님에 대한믿음을 예수님께서 철저히 완벽하게 지키고 계셨고

믿음으로 선한 ,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미운 것이다.

 

 

예수님을 미워하니 믿는 자는 당연히 미움을 받는다.

세상은 믿음을 싫어한다.

믿음으로 하는 모든 것은 싫어한다.

 

믿음으로 하는 모든 ,

믿음으로 하는 모든 행위,

믿음으로 하는 모든 섬김과 사랑은 싫어한다.

 

그래서 믿음 없는 ,

그래서 믿음 없는 섬김,

그래서 믿음 없는 봉사,

그래서 믿음 없는 열심을 세상은 좋아한다.

 

하나님은 믿음으로만 기뻐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11:6]

 

 

세상은 믿음없이 하는 것을 원한다.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자격의 배경은 말씀이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일이고

일을 이룬 하나님에 대한,

회복되어진 믿음이다.

 

 

 

우리는 열심히 한다.

우리는 죽어라 한다.

우리는 좌우도 돌아보지 않고 옆사람 신경 안쓰고 산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단은 가장 기쁘게 여긴다.

 

"믿음이 없이는 사단을 기쁘게 하나니"

 

 

죽음을 앞둔 예수님 입장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입장에서

앞으로 양들이 나에게 나아오며

그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음성을 듣고 나아온다는 믿음은 어디서 것일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7-29)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으로 가보지 않은 죽음 이후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고백하고 계신 것이다.

 

 

세상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믿음의 회복을 먼저 이룬 자가 되는 것이다.

사명을 예수님은 땅에서 이루고 계시는 것이다.

 

십자가 이전에 날마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믿음의 완성인 십자가를 이루는 것이다.

 

 

날마다 믿음의 고백,

날마다 작은 믿음의 고백이 모아져서

십자가를 가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곳에

영혼이 있다.

믿음의 고백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온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곳에

십자가의 영광이 찾아온다.

믿음으로 드린 순간이 영원의 열매는 낳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걸으면서

우리에게 자신을 그렇게 증명하고 계신다.

 

 

 

"나는 아버지와 하나이니라"

 

 

 

그래서 함께함의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임마누엘!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하겠다고 하신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이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약속은 하나님으로부터이다.

하나님을 아시니 우리를 향하여 마지막 보증을 하나님으로 하고 계신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9)

 

 

믿음이 우리에게 회복될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근거를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37)

 

 

오늘 우리가 회복 것은

예수님 안에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 믿음이다.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38)

 

 

 

 

예수님은 오늘 말씀 하셨고

말씀은 행함이고

행함은 믿음으로부터임을 증명하신다.

 

 

말씀과 믿음은 그렇게 철저한 연관을 가진다.

우리에게 말씀이 와도 믿지 못하니 말씀의 능력이 없다.

말씀의 밭은 오직 믿음이다.

 

 

말씀과 행함 사이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