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야 보인다(요4:46-54)
이시대를 정의하면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못하는 세대'이다. (48)
<표적과 기사>만 통용되는 세상이다.
한마디로 <결과>만 중요한 세상이다.
...
뭔가 보여줘야 믿는 세상이다.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잘된 자식을 가져야 부모의 말이 먹히고
큰 목회를 해야 뭔가 있는 것 같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지면 믿을 수 있을것 같은 세상이다.
다 표적과 기적을 믿는 세상이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위대한 표적을 보이면 믿는 사람들.
그래서 뭔가 기적과 표적을 만드려 부정도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오직 표적과 기적을 믿기 때문이다.
참 믿음은 보지 않고 믿고
표적과 기적이 아니어도 말씀이니 믿는 믿음이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니 당연히 그렇게 될줄 믿는 믿음이다.
요나의 표적이다.
세상이 표적과 기사를 원할때 오직 요나의 표적만을 주신 주님이다.
세상에 대하여.
세상이 추구하는 표적과 기적앞에 죽는 것이다.
표적과 기적앞에 반응하지 않고 죽어도 살리실것을 믿는 것처럼
표적이 없어도,
기적이 없어도
이룰줄 믿고 걸어가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은 약속이다.
약속은 이루실것에 대한 보증이다.
눈에 보이지 않나도 이미 이룬것이다.
그것이 약속이다.
믿음은 약속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표적과 기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씀하셨으면 행하실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행조건은 들음이다.
기도의 핵심은 간구가 아니라 들음이다.
들으면 믿으면 된다.
듣지 못하니 문제다.
사람의 말로 들으니 약속으로 듣지 않는다.
약속으로 듣지 않으니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 표적도 기사도 없다.
표적과 기서를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루어 지지 않은 일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증명된것을 믿으려하고
하나님은 믿으면 증명하려한다.
그래서 악순환이다.
결과를 누가 믿지 못하나?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믿으려 하지 않고 사실을 잡으려한다.
말씀은 무엇보다 확실한 사실인데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는가?
말씀을 사실로 믿지 않고 믿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믿음은 믿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노력이 아니라
인정이다.
결과를 믿는 세상,
표적과 기사를 믿는 세상에서
오늘 보지 않고 믿은 왕의 신하는 아들을 덤으로 얻었다.
믿음이 일하지 표적과 기사가 일하지 않는다.
표적과 기사를 구하지 말고 <들음>을 구하라.
믿음은 들음에서이다.
표적과 기사로 인생의 기적이 오지 않고
들음으로 기적이 온다.
기도는 들으면 끝이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니 기도로 표적과 기적만 구한다.
나는 듣는데 세상은 자꾸 더 말하려한다.
나는 보는데 세상은 자꾸 기적과 표적을 잡으려한다.
순서가 바뀌었다.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들으면 믿는 것이다.
믿으면 보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자꾸 표적으로 기사로 결과로 우리 몰고간다.
그래야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따르게 한다.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의 영의 전략은 오직하나 믿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보고 믿으라하나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다.
그래야 믿음이다.
세상은 결과를 이룬 나를 보게하고
하나님은 결과를 이룬 믿음을 보라한다.
<나>인가
나를 있게한 <믿음>인가?
아브라함이 숫양을 보고 믿었나
믿었더니 수양이 보였나?
그것이 믿음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의 이야기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 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졌나 갈라지고 내 밀었나?
보고 믿는 것은 사실이지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자꾸 사실을 확인하려하지 믿음으로 살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영이 노리는 세상의 전략,
<표적과 기사법>이다.
표적과 기사를 이기는 유일한 하늘의 법은
보지 않고 인정하는
<믿음>이다.
믿음은 들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믿으려 하지 말도 인정하라.
그길이 정답이다.
이시대를 정의하면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못하는 세대'이다. (48)
<표적과 기사>만 통용되는 세상이다.
한마디로 <결과>만 중요한 세상이다.
...
뭔가 보여줘야 믿는 세상이다.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잘된 자식을 가져야 부모의 말이 먹히고
큰 목회를 해야 뭔가 있는 것 같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지면 믿을 수 있을것 같은 세상이다.
다 표적과 기적을 믿는 세상이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위대한 표적을 보이면 믿는 사람들.
그래서 뭔가 기적과 표적을 만드려 부정도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오직 표적과 기적을 믿기 때문이다.
참 믿음은 보지 않고 믿고
표적과 기적이 아니어도 말씀이니 믿는 믿음이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니 당연히 그렇게 될줄 믿는 믿음이다.
요나의 표적이다.
세상이 표적과 기사를 원할때 오직 요나의 표적만을 주신 주님이다.
세상에 대하여.
세상이 추구하는 표적과 기적앞에 죽는 것이다.
표적과 기적앞에 반응하지 않고 죽어도 살리실것을 믿는 것처럼
표적이 없어도,
기적이 없어도
이룰줄 믿고 걸어가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은 약속이다.
약속은 이루실것에 대한 보증이다.
눈에 보이지 않나도 이미 이룬것이다.
그것이 약속이다.
믿음은 약속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표적과 기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씀하셨으면 행하실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행조건은 들음이다.
기도의 핵심은 간구가 아니라 들음이다.
들으면 믿으면 된다.
듣지 못하니 문제다.
사람의 말로 들으니 약속으로 듣지 않는다.
약속으로 듣지 않으니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 표적도 기사도 없다.
표적과 기서를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루어 지지 않은 일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증명된것을 믿으려하고
하나님은 믿으면 증명하려한다.
그래서 악순환이다.
결과를 누가 믿지 못하나?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믿으려 하지 않고 사실을 잡으려한다.
말씀은 무엇보다 확실한 사실인데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는가?
말씀을 사실로 믿지 않고 믿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믿음은 믿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노력이 아니라
인정이다.
결과를 믿는 세상,
표적과 기사를 믿는 세상에서
오늘 보지 않고 믿은 왕의 신하는 아들을 덤으로 얻었다.
믿음이 일하지 표적과 기사가 일하지 않는다.
표적과 기사를 구하지 말고 <들음>을 구하라.
믿음은 들음에서이다.
표적과 기사로 인생의 기적이 오지 않고
들음으로 기적이 온다.
기도는 들으면 끝이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니 기도로 표적과 기적만 구한다.
나는 듣는데 세상은 자꾸 더 말하려한다.
나는 보는데 세상은 자꾸 기적과 표적을 잡으려한다.
순서가 바뀌었다.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들으면 믿는 것이다.
믿으면 보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자꾸 표적으로 기사로 결과로 우리 몰고간다.
그래야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따르게 한다.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의 영의 전략은 오직하나 믿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보고 믿으라하나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다.
그래야 믿음이다.
세상은 결과를 이룬 나를 보게하고
하나님은 결과를 이룬 믿음을 보라한다.
<나>인가
나를 있게한 <믿음>인가?
아브라함이 숫양을 보고 믿었나
믿었더니 수양이 보였나?
그것이 믿음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의 이야기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 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졌나 갈라지고 내 밀었나?
보고 믿는 것은 사실이지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자꾸 사실을 확인하려하지 믿음으로 살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영이 노리는 세상의 전략,
<표적과 기사법>이다.
표적과 기사를 이기는 유일한 하늘의 법은
보지 않고 인정하는
<믿음>이다.
믿음은 들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믿으려 하지 말도 인정하라.
그길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