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만에 다시 세운 < 나 > 그리고 <교회> (요2:12-22)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성전이다.
아버지의 집이다.
예수님이 화를 내신 것은 두 가지 종류이다.
첫째는 제자들이 믿음이 없을 때이다.
몇 번씩 제자들이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일 때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믿음은 예수님이 요구하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둘째는 성전에 관해서였다.
오늘 본문은 그 두 번째인 성전에 관해서이다.
그냥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채찍을 직접 만드시고 상을 엎으시고
소나 양을 내 좇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도 쏟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비둘기를 가져가라 말씀하신다.
물리적 화를 내신 것은 성경에서 유일한 모습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전에 대한 열심을 제자들은 모든 것이 다 이루고 난 후에
다윗을 통해 예견한 말씀으로 이렇게 말한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2:17)
예수님은 왜 이렇게 성전에 대해서 이렇게 화를 내시나?
성전이 그렇게 중요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은 이 성전을 위해,
성전에 대한 열심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신다.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유일한 장소는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세상적 사업과 장사와 논리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곳으로 이 땅에 죽음을 통해 두 가지를 만드신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장소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성전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어떤 장소로 하지 않고 이제는 나 자신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셨다.
이제는 내가
< 하나님의 성전 > 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이 땅에 수년 어떤 것은 수 십 년이 걸린 성전을 허물어 버리셨다.
오직 그분의 성전이 내 안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의 모든 성전을 허물고
자신이 친히 성전이 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말한,
예수님이 말하신 성전에 대한 열심이다.
그 열심이 자신을 죽게 하고 결국 우리 안에 성전이 되셨다.
두 번째 장소가 바로
< 교회 > 이다.
그분이 이 땅에서 그렇게 죽도록 고생하며 자신의 몸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
세우기를 원하신 것이 바로
< 교회 > 이다.
그분이 죽고 이 땅에 만드신 그분의 성전,
그렇게 화를 내고 물리적 화를 내시면서 이루고 싶으신 것은 바로 교회이다.
생명으로 산 공간, 장소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바로 자신이 교회이다.
교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오직 교회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이다.
이 땅에 교회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힘을 얻는 곳이 없다.
그것이 예수님의 유일한 소망이고 희망이다.
이 땅에 흠 많고
문제 많고 타락한 성전을 다 엎으시고 자신이 성전이 되셨다.
교회가 되셨다.
목숨을 바꾸어서,
생명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그런데 그 교회가 다시
장사를 한다.
소도 들어오고,
양도 들어오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돈도 바꾸고
사업도 하고
46년 걸려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자랑하고 우러러보고
높아지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사람만 만난다.
사람만 만나고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다시 아담처럼 사람만 높아지려 한다.
하나님이 이룬 삼일 동안의 일은 기억지 않고
사람이 이룬 수년 수 십 년의 공로가 판을 친다.
하나님의 집의 논리는 없고
세상의 논리,
세상의 원리만 판을 치는 교회가 되었다.
그 교회를 보면서 화가 나야 하고
그 교회를 보면서
소도 내쫓고
양도 내 쫓고
비둘기 파는 사람도 내 쫓아야 하는데
돈도 엎고
돈 바꾸는 사람도 내 쫓아야 하는데
내 안에는 그런 예수님의 열정이 없는가?
열정은 있는데 용기가 없는가?
용기는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수 십 년 걸린 이 땅의 성전보다
삼일 만에 세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바로 < 나 > 인데
바로 < 교회 > 인데
예수님 당시의 성전보다 더 못해가는
<나의 성전> 을
이렇게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 하나님의 교회 > 를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정이 깊으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물리적 화를 내시는
그 열정으로 결국 자신의 열심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 삼킬 만큼 강한 열심인데,
우리는 그 자신되신 교회와 나 자신의 세속에 물듦을 이렇게 외면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교회로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열심과 열정은 교회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게 사랑하시고
그렇게 사모하시고
그렇게 있고 싶어하시던 성전에 대한 열정으로 그분은 이땅에 자신의 전부를 드리셨다.
그 예언의 시편이 84편이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다른 어떤 곳에서의 천 날 보다 오직 한 날
하나님의 궁정,
하나님의 집에서 한날을 소망하며
자신이 직접 성전이 되고
자신이 직접 그 성전을 세우기 위해 죽으셔야 만 했던 그 사모곡이
오늘은 그렇게 절절하게 들릴 수가 없다.
교회,
하나님의 성전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 만남 > 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유일한 장소,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성전,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과 이별한 세상에 하나님을 유일하게 만나는 장소로서의 공간을
예수님은 만들기 위해 자신을 친히 성전이 되어 죽음으로 재건하셨다.
수없이 파괴당하고
수없이 타락되고
수없이 조롱 당한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을 이제 이 땅에서의 건물이 아닌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의 공간으로 그분이 친히 성전이 되셨다.
그 일을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휘장을 찢으셨고
언약을 맺으셨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한 유일한 공간으로
< 임마누엘 > 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그분은 친히 성전이 되셨다.
죽어야만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새 성전,
하나님의 새집을!
그 성전이 내가 되고
그 성전이 교회가 되었다.
그 성전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안타까워하신다.
교회!
어찌하면 좋은가?
하나님의 성전!
어찌하면 좋은가?
아버지여~
아버지여~
상을 엎으시고
소를 몰아내시고
양을 몰아내시며
돈 을 엎으시고
돈 바꾸는 자를 내어 쫓으시며
비둘기 파는 자들을 향하여 노하시는 그분의 화가
오늘은 내 속에 그렇게 아프게 들린다.
아버지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