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이 없어야 자격이다(요1:43-51)
이상하다.
어제는 안드레가 베드로를 전도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하고 예수님을 만났다.
두 사람의 대화가 놀랍니다.
나다나엘을 향해 이 사람은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하고,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해 보자마자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이상한 것은 아무 고백도 없는 베드로는 제자로 부르시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한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후
고향에서 베드로가 고기 잡을 때 이름이 나올 뿐 어디에서도 이름이 없는 모습으로 산다.
베드로는 죽도록 고생하고 겨우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라 고백하고
나다나엘은 보자마자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라 고백했다.
그런데 자격을 보나 뭘 보나 나다나엘이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베드로가 제자가 되고 나다나엘은 여기 말고는 이름이 없다.
상식적으로 그를 향해 칭찬하는 예수님을 보면 당연히 그가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자격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제자로 부르지 않고 자격 없는 사람들,
즉 나사렛에서 살았던 사람들,
누가 봐도 선한 사람이 나오지 않을 곳에서 자란 사람들을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다.
결론이 뭔가?
예수님은 자격있고 당연히 제자가 될 만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지 않으셨다.
상식적으로 바울도 마찬가지다.
스데반을 죽이기 전에,
주님께서 그를 만나주시고 그를 부르셨다면
그는 참 자격이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사람을 죽이기 전의 모세를 하나님이 떨기 나무에서 만나주셨다면
더욱 귀하게 사용되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나다나엘을 보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시는 확실한 자격이 한가지 있다.
< 자격 없음 > 이
< 자격 > 이다.
어디에서 하나님은 자격 있는 사람,
참 이스라엘 이라한 나다나엘,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던 백부장,
스데반을 죽이기 전의 사도바울 등
자격있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으셨다.
자격 없는 모세,
자격 없는 베드로,
자격 없는 나사렛의 사람들,
세리,
사람 죽인 바울 등 확실히 자격 없는 사람을 제자의 자격으로 세우셨다.
말 그대로 자격 없음이 자격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그러실까?
왜 이렇게 자격 있는 사람은 제자로 부르지 않고
자격 없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것일까?
자격 있는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은 안 부르시고
왜 자격 없는 사람을 부르셔서 그분의 제자로 삼으시는가?
이유는 하나다.
세상에서 버린 것들로 하나님 나라의 기초로 삼기 위해서이다.
세상이 좋다고 한 것은 세상이 원한다.
그러나 세상이 버린 것은 세상도 가지지 않는다.
그 버린 것을 취하여 세상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버린 모퉁이 돌을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삼으셨다.
우리는 자꾸 자격을 찾는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으로 자격이 없어야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수 있다.
그럼 왜 그런가?
왜 자격없는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나라의 사람으로 사용하시나?
더 많이 용서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하는 이유다.
사람이 스스로 자격이 있다 여기면두가지 현상이 나온다.
첫째, 자기가 잘나서 잘한다고 여겨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지 않는다.
결국 아담이다.
아담의 실수는 하나님이 다 주셨는데 세상 되어진 것을 보니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도 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보았다.
< 하나님이 되어도 될 정도의 자격 >
그것이 아담의 생각속에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세상에 하나님은 이제 자격없는 사람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만 높임을 받도록 하셨다.
둘째,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는 오직 하나다.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 사랑의 자격은
< 자격없음 >이다.
우리는 자꾸 자격을 갖추려한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자격을 세상적으로 갖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자격이 세상과는 가까와지고 인정받는데
하나님과 사람과는 자꾸 멀어지는 것을 본다.
높은 직위,
높은 학력,
큰 사역을 할 수록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고
사람들과 멀어지고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것은
나의 자격 없음에 대한 인식이다.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로 기도하던 세리의 기도하는 마음이
우리의 날마다의 마음이어야 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나는 이것을
< 세리의 자격 없음으로 얻은 긍휼 > 이라 표현한다.
우리에게 세리의 자격,
즉 하나님 앞에 하늘 우러러 보지도 못하는 세리의 자격 없음이
결국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자격이 된다.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가 있다.
남자라면 적어도 이런 것들을 해야 된다고 해서 그 자격을 갖추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자격증도 도전하고,
오지도 여행하고,
노래도 도전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자격은 무엇인가?
< 하나님 사람의 자격 > 은 무엇인가?
그것은
< 자격 없음의 인식 > 이다.
자격이 없어야 쓰신다.
자격이 없어야 주님께 더욱 가까이 지낼 수 있다.
세상적 자격은 그저 삶의 방편일 뿐~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자격은 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날마다 나의 이 자격 없음이 그저 가슴 저리도록 아프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