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의 싸움(요1:35-42)
요한을 통해 안드레가 나옵니다.
안드레를 통해 위대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나옵니다.
언제요?
나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나의 사람들을 흘려 보낼 때입니다.
사람은 나의 수준만큼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의 그릇만큼 세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은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 가야 그리스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세례요한은 지나가는 그리스도를 향한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제자들 앞에서 말합니다.
그 말로 제자들이 떠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나,
자신의 권위나,
자신의 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을 제한 하고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기 알고 있는 귀한 것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이 작아질 거 같아서 입니다.
자신의 인기가 없어질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고립시키고,
그래서 이상한 말로 사람들을 낮춥니다.
결국 그들의 말은 자기자랑 아니면 다른 사람 욕입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자기의 자리를 놓치고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함입니다.
언제 귀한 사람이 태어나는가?
언제 귀한 인물이 태어나는가?
나의 그릇 안에서 보낼 때입니다
나의 손에서 더 큰 곳으로 떠나 보낼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일은 나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입니다.
나는 소리입니다.
나는 그저 들은 소리를 전하는 소리이지만
그 소리의 실체를 만날 때 사람들은 참 본질을 만납니다.
요한을 통해 안드레가 나오고 베드로가 나옵니다.
소리는 소리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 >
그것이 소리의 역할 입니다.
소리가 아니라 실체가 되려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알리지 않고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자꾸 나를 알리고
자꾸 나를 말하려합니다.
지나가는 그리스도를 보고 요한은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지나가는 어린 양을 보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해야합니다.
지나가지 않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말해야합니다.
나를 말하지 않고 내 안에 역사하시고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를 말해야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해야 할 일입니다.
이미 한국이 나의 주변이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말하기에 부끄러워졌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부끄러움 가운데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롬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나의 제자를 보내는 것이나
내가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나
다 부끄럽고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가 일하십니다.
나의 자녀를,
나의 직장을,
나의 사역을 그리스도께 드려야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전부를 책임지시고 일하십니다.
내 손에 들린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은 나의 도시락이 되지만
주님께서 쓰시면 오 천명을 먹입니다.
내 수하의 사람이 나의 사람으로 있으면 나의 사람이 되지만
내 수하의 사람을 주님께 드리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내 한계를 넘어 기다리십니다.
내 손에 잡은 것!
그것을 드려야 주님이 바통을 받아 쓰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 드림의 싸움 > 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 잡기 위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드리기 위해서 전달하는 사람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달 해야 하는데 아직 내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그것을 드려야 하나님의 일을 봅니다.
다음을 준비합니다.
초보는 잡음의 싸움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고수는 드림의 싸움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