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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반대 말은 의심이 아니라 합리와 이성이다

믿음의 반대 말은 의심이 아니라 합리와 이성이다

 

 

 

 

 

 

믿음의 반대 말은 의심이 아니라 합리와 이성이다(24:1-12)

 

 

예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하고 우리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 기억하고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땅에서의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는 것은 기억조차 합니다.

죽었다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이야기는 기억조차 못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도 그러합니다.

사도들도 베드로도 그를 가장 사랑하는 여인들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중요하다가 말씀하시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만 기억하고 붙잡으려 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천명을 먹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위를 걷는 것도 중요합니다.

병자도 고치고 기적도 행하고 없는 놀라운 일을 나를 통해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심은 자신이 죽는 것이고 그리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땅에서의 사역의 열매는 죽었다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과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 같아질 우리는 사역과 삶의 본질에 충실하게 됩니다.

 

 

누구도 예수님이 살아나리라고 믿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까요?

 

한번도 본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초는 상식과 합리와 이성이라 수없이 말했습니다.

세상에 상식과 이성과 합리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는 이성, 상식, 합리의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기초로 만드셨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서 여셨습니다.

무엇이 남았습니까?

길은 열렸습니다.

남은 것은 다시

 

< 믿음 > 입니다.

 

 

하나님 나라,

에덴동산의 기초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믿음이 깨어졌습니다.

합리와 이성과 상식이 믿음을 이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다시 믿음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를 회복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마음으로,

사람의 생각으로 절대 믿지 못하는 일이 다시 세우셨습니다.

 

< 죽음을 이긴 부활 > 입니다.

 

 

부활은 믿음으로만 보게 됩니다.

 

이유는 믿음의 법을 다시 세상에 주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 믿음으로 되어짐을 회복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부활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보다 땅에서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릅니다.

 

수없이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없이 그것을 말하고 보지만,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먹고 마시고 높아지고 나가는 것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막상 문제가 생겨서 기억을 더듬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자 그때야 여인들과 사도들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도 믿지 못합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24:11)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합리와 이성으로 상식으로 세뇌된 우리에게

 

< 허탄한 > 들리는 입니다.

 

 

사실 우리의 생각으로 허탄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하나님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우라,

서로 사랑하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

섬기는 자가 자이다,

번에 번이라도 용서하라,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나를 섬기는 것이다!

 

 

허탄하고 허무한 말처럼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허탄하다고 여기는 말이 사실은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할 허탄한 들리는 말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여는 문이요,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면 것이 남는 것이 없는 ,

나에게 적용할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능하면 따르십시요.

그러면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뭔가요?

믿음입니다.

 

천사들의 이야기에 여인들도 사도들도 허탄한 들려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24:11)

 

 

 

우리의 문제는 합리와 이성을 이기는 믿음이 없음이 문제입니다.

제자들도 믿지 못하고 합리와 이성과 상식에 묶여 있는데 우리인들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것이지요.

단지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그분의 하심을 따라야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지자의 글로 시작해 성경에 관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설명하니 그때야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말씀이 아니면 우리는 옆에 예수님이 있어도 모릅니다.

기적이 있어도 알아 듣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4:25)

 

 

믿음을 여는 열쇠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삶으로 믿어지고 그것을 믿음으로 살아낼 예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손을 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믿기 때문에 행한 나의 삶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믿기 때문에 용서하고

믿기 때문에 포기하고

믿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아니하고

믿기 때문에 물질을  통해 섬기고

믿기 때문에 세상의 삶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택한 삶이 있어야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는 자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합리와 이성을 따지는 교회,

세상보다 상식을 구하는 교회,

세상보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교회,

세상보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다고 많은 소리가 들립니다.

 

 

 

아닙니다.

믿음이면 됩니다.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합니다.

너무 단순해서 믿지 못할 뿐이지 믿음은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도 가능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합리와 이성이 아니어도 가능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자꾸 믿음과 세상으로 달려가는 합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24:12)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보고 놀라기는 합니다.

그러나 빈손으로 마음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됩니다.

 

 

< 믿음 > 반대말은 < 합리와 이성 > 입니다.

합리와 이성의  끝은 < 두려움 >입니다.

 

 

지금 주님이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립니다.

 

"두려워 말라,놀라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됨이니라"

 

 

믿음은 두렵지도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기쁨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