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까지" (눅22:47-53)
얼마나 참아야합니까?
우리가 진짜 힘든 것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팔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모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나의 과거를 잘 알고,
나의 마음을 잘 알고,
나의 결백을 잘 아는 사람이 나를 사람들에게 파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더욱 힘든 일입니다.
가롯 유다로 힘든 것은 그가 나를 팔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나를 너무 잘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눈물인 것은 아무도 아닌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허락한 아담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원수를 원수로 갚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음으로 원수를 갚기로 작정합니다.
'그것까지'입니다.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눅22:51)
다윗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원수를 참음입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욕하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자신을 죽이는 것은 참습니다.
자신의 장인이요,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아끼는 자요,
가장 자신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참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참는 것입니다.
'그것까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아담을 향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다윗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것까지 참는 것입니다.
요셉의 위대함도 그것까지 참는 것입니다.
형들에게 팔리고
가장 공을 들여 충성한 주인의 부인에게 배반당하고
정성으로 일하고 수고하고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공덕을 가장 잘아는
관원장이 자신을 잊어버린 것까지도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형들까지 형들이 자신에게 목숨 걸고 먹을 것을 얻는 것까지 참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그것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까지'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장 사랑해줄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를 모함하고,
나를 배반하고,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를 모르게 다른 사람과 험담하고
그것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배반을 작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이것까지'참으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이미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떠난 인간의 본질은 배반입니다.
하나님을 버림입니다.
그래서 버린 인간에게 '그것까지'참아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완전한 하나됨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기로 영혼과 하나되기로 뜻을 정하신 것입니다.
첫째, 용서는 모르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지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그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화가 나고 용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주었는데,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나라를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함께 먹고
함께 나누고
함께 울고 웃었는데
그런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를 세상에 파는,
나를 세상에,
구덩이에,
웅덩이에,
원수에게 파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버리면 말을 안 합니다.
원수에게 돈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그것입니다.
'그것까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단 한번도 칼을 든적도 없는 예수님을 칼을 들고 몽둥이를 들고 잡으러 왔습니다.
원수가 아닌데 원수처럼,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처럼 대우합니다.
그런 말을 한적도 없고
그런 행동을 한적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만한 근거도 없는데 그렇게 대우합니다.
'그것까지'입니다.
'그것까지'를 참아야 완전한 하나님의 드라마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이것까지,
그것까지를 참지 못해서 늘 사람들의 귀를 자르고
사람들의 팔을 자르고
사람들의 몸을 상하게 하고 실족하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약함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팔을 자르라 하시고
내 눈을 뽑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내가 할 일은
'그것까지'입니다.
'이것가지'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니 쓸데 없이 귀를 자릅니다.
쓸데 없이 실족케합니다.
싸운다고 세상이 변하면 예수님은 싸웠겠지요.
싸우는 것이 일이 아닙니다.
싸우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내가 참아야 하나님의 십자가를 이룹니다.
내가 참지 못하면 십자가는 없습니다.
첫째, 우리 중에 하나인 사람의 '그것까지'를 참아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이 해낸 위대한 것은 '그것까지' 참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도록 힘듭니다.
나도 그것을 알고 당신도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것을 해야합니다.
어떤 놀라운 업적이 아닙니다.
나를 뒤에서 험담하고,
나를 뒤에서 욕하고
나를 뒤에서 배반하는 그 사람,
아니 나를 파는 사람,
'그것까지'입니다.
둘째, 내가 하지도 않은 것을 했다 하고, 내가 말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 하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오해하는 것까지 참는 것입니다.
나는 범죄자도, 도적도 강도도 아닌데 칼과 몽둥이로 대합니다.
그것까지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참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가는 길,
십자가 위에서 가장 힘든 것은 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할 수 있는데
십자가를 던지고 능력을 보일 수 있는데
그것을 참는 것입니다.
'이것까지'
'그것까지'입니다.
다윗과
요셉과
호세아와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는 하나님의
'그것까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파는 가롯유다도 가장 아끼는 제자 베드로도
'그것까지'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준 아담도 '그것까지'입니다.
왜 베드로는 안되고
가롯유다는 안됩니까?
다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그것까지'의 은혜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로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22:51)
우리의 하나님의 사람됨을 업적으로 이루려 하지 마세요,
우리의 하나님 자녀됨을 칼 즉, 나의 능력으로 나의 실력으로 나의 항변으로 이루려 하지 마세요.
우리의 자녀됨은 오직 '그것까지'참는 인내입니다.
인내를 증명해 보일 때 우리는 '그것까지'를 이루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의 참 마음과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수 많은 오해와 험담과 배반과 눈치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까지'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와 그분의 뜻을 이루는 이 땅에서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그것이
삶의
사역의
천국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