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을 따라(눅22:39-46)
사람은 결심을 따라 살지 않고 습관을 따라 삽니다.
아무리 결심해도 결심대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습관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습관대로 사신 삶입니다.
그분의 습관은 무엇일까요?
첫째, 떡을 좇지 않고 말씀을 좇는 삶입니다.
육체적 본능이 아니라 육체를 거스르는 습관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습관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의 습관이 아니라 영혼의 습관을 따라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체가 길들여 진대로 살지 않고 영혼이 길들여진 대로 사셨습니다.
세상의 습관은 육체입니다. 육체의 습관은 절대 육체로 길들여 지지 않습니다.
오직 영혼의 습관으로 길들여집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
육체를 제어하는 것은 생기입니다.
생령입니다.
그래서 영혼입니다.
흙에 생기가 들어가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 영혼이 육체의 습관을 따라 살다 사람,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 육체가 다시 영혼의 생기를 얻으려면,
영생을 가진 생명이 되려면 영혼의 습관을 따라야만 합니다.
영혼은 습관은 오직 말씀의 습관을 따를 때 육체가 제어됩니다.
그래서 유혹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찾아오는 것은 유혹입니다.
영혼의 습관을 따르지 않으면 육체는 유혹 받게 됩니다.
육체가 유혹을 받으면 결국 영혼의 파멸입니다.
유혹을 받는 육체는 영혼의 습관으로만 조절이 가능합니다.
둘째, 자신의 본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습관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22:42)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 자신의 뜻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이야기나 어떤 사람의 뜻이 옳게 여겨지는 것은 결국 나를 높이거나 나를 세워주거나 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에는 다 옳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유혹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높아 지는 것입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본능을 좇아 갑니다. 그래서 내 뜻이 중요하고 내 목적이 중요합니다.
기도한 예수님은 자신의 본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나의 뜻이 아버지의 뜻을 좇아갑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본능을 좇아갑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칼을 휘두르고,
배반하고,
도망하고,
자신의 뜻에 전부를 걸고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습관이고 예수님의 습관입니다.
셋째, 우리는 세상의 것, 세상의 힘으로 사는 것이 습관이고
예수님은 하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습관입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눅22:43)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여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고,
성령으로 말하셨고,
성령으로 일하셨고,
그리고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하셨다.
우리는 세상의 힘만이 최고라고 여기고 예수님은 하늘의 힘만이 유일하다고 보여주신다.
우리는 세상의 힘으로 사는 습관을 따라 살아서 결과는 세상적이고
예수님은 하늘의 힘으로 사는 습관을 따라 사셨기에 결과는 성령의 열매이다.
사람이 가장 어려울 때 가장 믿는 것을 찾는 다.
그것이 사람이면 사람을 찾거나 부르거나 만난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를 곁에 두고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그것이 습관이다.
사람이 가장 어려울 때 나타나는 모습이 습관이다.
제자들은 가장 어려울 때 고향을 찾았고
예수님은 가장 어려울 때 성령과 함께 하늘의 힘을 구했다.
상황이 어려울 수록 예수님은 더욱 간절히 하늘의 힘을 구하셨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울 수록 더욱 사람을 찾는다.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주님은 제자들과 할 일을 다 마치셨다.
마지막 만찬도 하셨고,
준비해야 할 일들도 일러주셨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
그것이 주님의 주님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본질을 본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대화를 할 때 결국 묻는 것은 돈이다.
결국 알고 싶은 것은 돈이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대화를 할 때 결국 묻는 것은 자리다.
내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본능적으로 묻고 싶고 알고 싶다.
그래서 그것을 참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묻는다.
우리는 결심한대로 살지 않고 습관대로 산다.
그래서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결심을 하고 기도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습관대로 사는 것이다.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예수님의 세가지 습관이 예수님의 예수님됨을 보여준다.
우리의 우리됨은 결국 우리의 습관이 만든다.
자신을 바꾸고 싶은가?
결심하지 말라.
결심하지 말고 습관을 바꾸라.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안타까움은 이 세가지 습관 때문이다.
말씀을 좇지 않아 떡 즉 세상의 방법을 좇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좇는 것,
마지막으로 하늘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살려는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습관에 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이 습관이 철저히 타락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결심과 생각과 행동의 구호와 다짐이 아니라 오직 습관을 따라 사는 삶을 훈련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의 두 가지를 믿지 않는다.
첫째, 나는 사람들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둘째, 나는 사람들의 아멘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사람의 습관을 믿는다.
내가 믿는 것은 사람의 반복을 믿는다.
그것이 우리의 결과를 만들고 우리의 마지막을 만든다.
한번 눈물 흘린다고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다.
한번 아멘 한다고 그 사람이 정말 믿는 것이 아니다.
한번 봉사하고 한번 헌신한다고 그 사람이 헌신된 사람이 되고
최고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번 말로 멋지게 꿈을 전하고
한번 설교로 이야기 한다고 그 사람이 정말 멋진 사역자라고 믿지 않는다.
설교가 아니라 그 사람의 번복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그 사람의 본질을 말한다.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본다.
눈물 잘 흘리는 사람들을 본다.
아멘 잘하는 사람들을 본다.
설교 잘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습관이 더더욱 알고 싶어진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은 영광의 보좌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습관이다.
작은 습관 하나 바꾸지 못하면서 위대한 삶을 꿈꾸는 것은 개꿈이다.
작은 시간 하나 드리지 못하면서 주를 위해 목숨을 드리겠다는 것은 다 가짜다.
작은 물질 하나 기쁨으로 드리지 못하면서 주를 위해 살겠다는 것은 전부 가짜다.
설교한대로 살지 못하고
말한 대로 살지 못하면서
영혼들을 주께 인도하겠다는 꿈은 다 개 꿈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다.
오해하지 말라.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 나를 향한 가짜와
나를 향한 개꿈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나의 습관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습관은 훈련이다.
습관은 피나는 수고다.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십자가도 생명도 장담할 수 없다.
예수님은 '날마다'라는 습관에 성공하셨기에 십자가에 가실 수 있다.
습관이 되지 않으면 유혹이 온다.
유혹은 결국 나를 높이려는,
나의 이름을 내려는,
나의 뜻을 이루려는 선악과이다.
우리는 습관이 되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간다.
세가지 습관을 기억해야한다.
첫째, 떡을 좇지 않고 말씀을 좇는 습관
둘째, 자신의 본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습관
셋째, 세상의 힘이 아닌 하늘의 힘으로 사는 습관
습관이 인생을 바꾸지 구호나 말이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1구역 12구역이 지난 토요일
발방크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성경책이 한명도 없는 교회입니다.
가난해서입니다.
50권을 선물로 준비해오시고
의자 방석과 점심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섬김은 기분내켜서 하는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은 습관입니다.
습관을 따라서 오신 구역모두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