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어디에 계십니까? (눅21:29-38)
천지의 없어짐,
세상의 징조,
민족들의 혼란,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는 이 모든 일의 목적이 무엇일까?
천지가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가 없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다시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
즉 지구상에 사람의 존재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입니다.
무엇이든지 창조 목적대로 살지 못하면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기준에 따라 빛을 창조하시고,
말씀의 기준에 따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말씀의 기준에 따라 하늘과 땅의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닮아 아담도 말하는 대로 생명들이 이름을 갖고 그 이름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만 이야기 하십니다.
말씀으로만 일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단이 하는 첫 번째 시험에서 사람의 사는 기준을 정하셨습니다.
말씀입니다.
천지는 크지만 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말씀을 듣고 싶어합니다.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판을 이야기해도 기준이 되는 말씀을 듣기 위해 이른 아침, 즉 새벽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나아갑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세상의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우리 인생에 기준이 되지 않는지 36절에 서 말씀하십니다.
왜 이런 능력의 말씀,
온 세상의 기준이 되는 말씀이 우리에게는 기준이 되지 않고 능력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조심하다라는 말은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한다.
즉, 마음을 다른 곳에 두기 때문이다.
마음을 두는 곳에 내 영혼이 있다.
그래서 어제는 믿음은 방향성이라 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내 영혼도 있고 육체도 있다.
그래서 그 조심해야 하는 것,
즉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이 따르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방탕하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생활의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둔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 마음이다.
마음이 과한것이 방탕이다. 원어적으로 방탕은 과한 것이다.
술 취하는 것은 마음의 기준이 없어지는 즉 마음을 마취시키는 것이다.
마음이 중독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중독은 내 마음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생활의 염려다.
생활의 염려는 세상에 대해서 반응하면 영혼의 마음은 둔하여 진다는 것이다.
마음이 둔하여지면 영혼은 방향을 잃고
감각이 없어지고
내 마음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둔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으며 마지막 때를 분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따라가면 망한다.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망한다.
그래서 성령이 오셨다.
성령은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어디에 거하시는가?
성령이 어디에 있는가?
마음에 있다.
성령의 전은 우리의 마음이다.
그래서 말씀의 기준이 사라진 세상에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세상에
눈이 기준이 아니라
성령은 마음 즉 성령께서 기준이 되도록 마음에 거하셨다.
방탕?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다 눈을 따라 오는 것이다.
사단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보기에 좋고 먹을만하고 탐스러운 선악과를 먹었다.
눈이다.
눈이 기준이 된다.
타락한 세상의 기준은 눈이다.
말씀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이 기준이 된 세상에 마음이 기준이 되도록 성령을 마음에 두셨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을 따라,
마음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따라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육체를 따라,
유혹을 따라 살지
마음의 성령을 따라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성령의 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 법을 배운적도 들은적도 없다.
그냥 혼자 터득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다.
말씀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영혼이 움직이고
그래서 우리의 육체를 이끈다.
말씀의 본질은 그리스도고 그리스도의 영을 세우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법을 깨닫지 못하고
성령의 일하심을 알지 못하니 우리 가운데 깨어있음도
성령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말씀이 기준이다.
그래서 성령이다.
말씀은 성령의 일하심 따라 일하신다.
성령을 알지 못하면 말씀은 기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된다.
말씀이 짐인가? 말씀이 능력인가?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능력은 오직 성령이다.
성령을 알아야 기적을 체험한다.
성령에 관하여 묵상한 글 두 편을 올린다.
함께 성령의 은혜가 우리 삶에 충만하기를 소망해본다.
성령이 오시는 길
http://www.lovesa.or.kr/jsp/board/view.jsp?type=U11&seq=734&cpage=3&searchType=&searchKeyword
성령의 법칙(1/7) 온유의 법칙
http://www.lovesa.or.kr/jsp/board/view.jsp?type=U11&seq=508&cpage=4&searchType=&search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