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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과 보임

드림과 보임

 

 

 

 

 

 

 

 

 

 

               드림과 보임(21:1-9)

 

 

 

 

부자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입니다.

 

사람의 헌금은 겉은 같으나 목적이 다른 헌금입니다.

 

오늘 헌금 이야기는 오제 서기관들을 향하여

이생의 자랑,

안목의 자랑,

대접 받는 자리의 욕심을 향하여 경계하고 조심 할것을 말씀하시고 이어나온 이야기

이야기를 하다 눈을 들어 부자와 과부의 헌금 모습을 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헌금의 목적입니다.

 

부자의 헌금은 앞에서 말한 자랑을 위한 헌금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헌금은 하나님을 위한 헌금입니다.

 

이렇게 다른 헌금을 할까요?

보이기 위해서 하는 헌금과 드리기 위해서 하는 헌금입니다.

보이기 위해서 하는 헌금은 결국 자신의 자랑, 대접 받음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헌금입니다.

 

그러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드리기 위해서,

그냥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드린 헌금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보이기 위해서 하는 헌금은 결국 성전을 보이기 위해서 사용하고 짓습니다. (5)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럴듯한 모양을 보이기 위한 나머지 돈을 움켜쥐고 헌금합니다. 보이는 것이 목적이니 사람들 앞에 적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고싶을 정도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자신의 옷과, 잔치의 높은 자리에 앉을 정도의 돈과, 시장에서 문안 받을 정도의 돈은 반드시 챙겨놓게됩니다.

 

그러나 과부는 보이기 위해서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보이기 위한 나머지 돈을 남겨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부입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드림과 보임의 차이입니다.

보임은 결국 자신을 치장하고 자랑할 것을 남겨둔 보임이고

드림은 드리고 난후 하나님이 책임지셔야만 가능한 드림입니다.

 

드림과 보임의 차이,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하는 상황의 예물이 드림이고

하나님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스스로 살수 있는 정도가 보임입니다.

 

우리는 드림과 보임에서 갈등합니다.

이것 드리면 나의 앞날을 보장 받을수 없기에 결코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믿으면 드림이 되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보임이 됩니다.

 

보임의 헌금은 결국 성전을 사람들이 보고 감탄할 정도로 짓게 됩니다.

자신도 자랑할만하게 보이고 성전도 자랑할 만하게 짓는 것입니다.

 

시작이 다른 끝도 다릅니다.

그래서 진짜 끝도 다릅니다. 그렇게 보인 헌금으로 보이게 지은 성전은 하나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집니다.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여 상징으로 성전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의 착각은 세상에서 그럴듯한 것으로 포장하고 뭔가를 세우면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해서 감탄할 정도의 것을 이루려합니다.

속에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뜻이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뜻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보임이 아니라 드림입니다.

그래서 보임의 끝은 자랑이고 자랑의 끝은 허무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보이기 위해서 모든 보임은 허무입니다.

서기관들의 삶의 목적,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목적은

보임입니다.

 

바벨탑이고

세상의 왕들이고

사울 왕이고

 모든 하나님을 떠난 최고의 사람들은 오직 보임입니다.

 

보임의 최고 정점인 성전은 이제 허무로 돌아갑니다.

세상은 허무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보임의 결과는 허무입니다.

 

개인에게 있어서 보임의 최고는 자리입니다. 높은 자리입니다.

그것이 발전해서 종교적 보임의 최고자리는 성전입니다.

감탄할 만한 최고의 건물!

그래서 세상은 자꾸 높은 건물을 짓습니다. 보임의 열매입니다.

 

 

내일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드려진 헌금으로 놀랍게 세운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기다립니다.

 

많이 넣었다 적게 넣었다가 아닙니다.

적어도 드림이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받음입니다.

그러나 많아도 보임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거절입니다.

 

보임과 드림의 본질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드림을 이룹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다시 채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은 드림이 됩니다.

 

그러나 보임을 사는 사람은 자신이 이루었다고 여기기에

자신이 드러나야 하기에

자신의 자랑을 위해 뭔가를 남겨놓고 자신이 믿는 어떤 것을 숨겨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완전한 드림 자신을 드림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자신의 보임을 따라가 사람의 마지막은 허무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배도 참석하고

헌금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드림이 있는 믿음입니다.

 

보임에 매인 세상의 상징인 성전을 그리스도는 허물라 하십니다.

그래서 보임이 아니라

드림을 위해 친히 자신이 성전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임을 완전히 걷어버리고 드림을 드릴 있게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보이기 위할 것도 없고

허무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자신입니다.

안에 사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림을 드릴 있는 길을 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안에 입니다.

성전을 위해 보임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헌금의 보임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나의 마음을 바로 알고

바로 응답하시고

바로 본질을 알아채시는 그리스도가 안에 있습니다 .

 

드림입니다.

그래서 헌금이 아닙니다.

드림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아닙니다.

드림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원하십니다.

나의 ,

나의 생명을 주님께 드림으로 살기 원하십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은 여기도  저기도 아닙니다.

오직 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드림과 보임에서 이제 자유 해야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위해 보임의 끝인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보임의 끝이 없는데 아직 보이기 위해 사는 우리 인생들이 얼만 허무한 삶인지 모릅니다.

 

믿음은 보임이 아니라 드림입니다.

 

 

 

 

* 작년 9월에 죽은 파니 전도사입니다.
무당에게 총을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를 믿기전 자신이 총을 들고 다니다,
예수를 믿고 총을 던져버리고 십자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개척하고 8개월만에 2살난 딸을 천국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작년 무당의 총에 맞아 천국으로 먼저 갔습니다.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곳에서
오직 복음을 위해 자신의 자녀도
자신의 삶도 드리다
생명까지 드린 아름다운 순교자입니다.

자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이 살지만
보임이 아닌 드림의 삶을 살아낸 충성스런 종입니다.

건물뒤에는 자신의 두살된 딸아이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저에게 많은 의미를 주는 사진입니다.
보임을 살면 이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오직 드림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