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습성 열 가지(눅20:19-26)
오늘 예수님의 포도원비유를 듣는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하는 행동 속에 죄인의 습성이 그대로 들어있다.
죄인된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자.
1. 눈치는 빠르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19)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지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돌이키면 되는데 돌이키지 않고 분을 내고 화를 내고 열을 낸다.
문제를 문제라고 하면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더 열을 낸다.
이들의 특징은 사람의 눈치를 보기에 눈치는 백 단이다.
2. 백성 즉 사람들의 눈치를 엄청 살핀다.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19)
죄인된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엄청 살핀다는 것이다.
내가 진리를 행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기 즉 인정이나 반응에 목숨을 건다.
사람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가는 의인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서기관과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나
그들은 죄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눈치가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운지 사람에게 가까운지는 내가 사람의 눈치를 얼마나 살피는지를 보면 된다.
사람에 연연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하랴라고 말한 바울처럼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눈이 된다.
사람 눈치 보지 말라.
3. 잘 엿본다. 평가(눅15:1-2)에서 이미 살폈다.
"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20)
엿보는 사람의 특징은 수근 거림이다. 잘 수근 거린다. 엿보는 목적은
수근 거리고 흠을 잡기 위해서다. 그를 세우고 격려하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하지 않는다.
오직 수근 거림이다. 그래서 엿봄은 죄악이다.
4. 자기가 잡지 않고 다른 사람 즉 더 큰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흠을 잡게 하여 죄를 몰고 간다.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20)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늘 다른 사람을 핑계 대서 말한다.
누가 그러더라 누가 이런 말을 했고 누가 이런 권위로 위임을 했다는 식의 말을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맞고 아니고를 말하지 않고 나보다 더 큰,
혹은 다른 어떤 불확실한 사람을 들어 흠을 잡아 몰고 간다.
하나님이 인생의 기준이 아니고 사람이 자신의 기준인 사람은
늘 다른 어떤 사람의 권위나 말을 핑게삼아 다른 이를 흠잡는다.
5. 본인이 하지 않고 뒤에서 조종한다.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20)
늘 뒤에서 조종한다. 본인은 뒤에 빠져있다. 그래서 행동대장을 사용한다.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 뒤에 숨어서 분위기를 조종한다.
왜?
그것이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함을 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앞세우고 뱀을 앞세우고 다른 이를 앞세운다.
뒤에 숨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문제로 몰아가고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6. 스스로 의인인체 한다.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20)
절대 의인이 아니다.
의인인척한다.
스스로 안다.
자신의 죄인됨을!
그러나 절대 그것을 표현하고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의인인체 한다.
사람 앞에서 의인인체함으로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과 명분을 만들려한다.
이야기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늘 명분을 만든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럴듯한 모양을 너무 잘 만든다.
그래서 자신은 늘 문제에서 피해가고 책임을 지우는 질문이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7. 본인도 풀지 못하는 문제로 시험거리를 만든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22)
시대적 난제나 자신들도 풀지 못하는 이슈들을 가지고 기를 죽이고 상대를 힘들게 한다.
한마디로 자신도 못하는 문제들을 다른 사람이 이루어내라고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자신도 하지 못하고 해 본적도 없고 자신도 고민하는 문제를 다른 사람이 하라고 요구한다.
특히 들은 것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들은 것은 많은데 살아 내는 것이 안 되는 오래된 성도들이 그렇다.
본인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넘기므로 사람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그리고 답을 주지 못하면 능력이 없다고 온 세상에 떠들고 다닌다.
8.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침묵한다.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26)
상대방에게 하듯이 어떤 사람이 조리 있게 답하거나 또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면
그때는 또 아무말 하지 않고 침묵한다. 용서를 절대 구하지 않는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된 분위기가 없어지면 다시 이전의 7가지 형태를 반복한다.
9. 말로 조진다. (말로 다 하려 한다) . 다른 사람에게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21)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말로 다 조진다.
말을 듣다 보면 세상에 안될 일이 없을 것 같다.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말로 자신의 인기를 모으고 말로 자신의 위치를 보장 받는다.
그런데 말 빼면 아무것도 없다. 말을 빼면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질문이나 논리는 얼마나 예리한지 모른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냐?
기가 막힌 질문이다.
감히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말로 조지는 사람들은 한다.
왜?
말로는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아담에게 찾아왔던 뱀이다.
뱀은 말로 조진다.
사단의 정체는 거짓의 영이다. 말로 조진다.
진리는 삶이다.
십자가의 삶이 생명을 구하지 말로는 아담을 죽였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다. 그래서 말에 능하고 말로 조지고 말로 다하려한다.
예수님의 자손, 예수님의 백성은 말이 아니다. 십자가로 죽음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10. 남들이 봐도 다 아는 꼼수를 가지고 덤빈다.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23)
사람들이 꼼수를, 간계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알아도 더 성숙하기 때문에 인내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성숙한가 성도가 성숙한가? 생각해야 한다.
경우의 차이는 있으나 목회자 보다 성도가 더 많이 참는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목회자의 실수가 많고 미성숙이 많고 부족함이 많음을 종종 느낀다.
물론 내가 그러니 더욱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 할 것 없다.
내가 부족하니,
내가 어리석으니,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더욱 그런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뭘 잘 모른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목회자는 한가지를 모른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얼마나 많이 참고 참는지를!
오늘 이 말씀은 서기관과 대제사장과 연관된 이야기였다.
이것이 다 나의 이야기이다.
나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이미 자리를 차고 있는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이고 죄의 모습이다.
왜 이런 문제들이 나오나.
답은 어제와 같이 간단하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구분이 없다.
하나님의 것이 명확하면 세상의 것이 명확하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니 이런 문제들이 일어난다.
우리 안에 죄의 형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아담은 자신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지 못함으로 죄 가운데 섰다.
포도원비유도,
가이사에 대한 질문도,
부활에 대한 이야기와 다윗의 자손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하나님의 것,
주인의 것을 도적질한
우리의 믿음 없는 삶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주인이 누구인지
왕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나에게 구분이 없다면
우리는 죄인의 열 가지 모습을 늘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닮은 나의 모습을 본다.
그저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대제사장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닮았다.
나만 그런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주인으로 왕으로 섬기며
순간 순간 성령의 말씀과 인도에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주인을 정하자.
하나님의 주되심을 오늘 하루 동안 선포하자.
그리고 주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되돌리자.
거기에 참 자유와 능력이 있다.
빌린돈 갚아라.
속이지 말아라.
사기도 치지 마라.
죄는 고백하라.
용서를 하고 용서도 구하라.
그것이 주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참 모습이다.
말로 조지지 마라. ^^
* 무당의 점쾌를 내는 물건과 치료에 쓰는 약초다.
이 나라는 무당이 판을 치는 나라다.
어딜가든 주술이 성행하고 많은 돈을 주고 사람들이 무당에게 간다.
다 아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람들은 간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사람들은
모르고도 가고 알고도 간다.
그것이 연약한 죄인된 사람의 마음이다.
죄인에게 주님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