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은 생명을 걸어야 바뀝니다. (눅19:45-48)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상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상식의 기준이 바뀌면 상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상식이 바뀌었습니다.
에덴동산 즉 하나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는 곳이 숨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해야할 에덴동산이 자신의 뜻을 이루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전에 대한 '아담' 즉 '사람' 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 이면에 어떤 속셈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 속셈 즉 상식이 변하면 믿음도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은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자신의 상식으로 살게됩니다.
상식은 바꾸는 것은 생각이 아닙니다.
그 상식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바뀌어집니다.
그 상식은 물건을 집어 던지고 말을 한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오직 생명입니다.
생명으로 그 상식이 잘 못되었다고 증명해 내야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전을 향하여 너희들이 기도하는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정의입니다.
사람은 에덴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이 아닌 자신의 뜻을 이루는 곳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상식이 지금까지 인간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 상식이 너무 깊이 베여 예수를 믿고도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들의 속셈은 믿음을 이용해 자신들의 상식을 채우려하는 것입니다.
에덴이 기도하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사귀고 거니는 곳이 아니 자신의 뜻이 이루는 곳이 상식이 되고
하나님이 왕인데 자신이 왕으로 인식하는 것이 상식이 되고
종인데 주인으로 사는 것이 상식이 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찬양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상식이 되고
사람이 찬양을 하지 않으니 돌들이 찬양을 해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죽일 일이고
장사하는 곳이 성정이 되는 상식 속에 살아야 하는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은 큰 업적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상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교역자 구함의 조건입니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 상식이 있는 사람, 기본 인격이 있는 사람, 운전면허 1종 보통이 있는 사람.
교역자의 세계도 상식을 구해야합니다. 세상은 어떠하겠습니까?
한국이 상식이 변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상식이 변했습니다.
한국사람이 이 상식이 변했습니다.
얼짱 몸짱만이 인간이 되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만이 사람 대접을 받습니다.
높은 사람만 인정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박사학위를 해야 담임목사가 되어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돈 없으면 교회다니기도 힘들다고 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영어에 목숨을 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어 잘하면 뭐든 잘하는 인간처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상식의 변화를 통해 인간 본질을,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을 사람 앞에서의 인간으로 변질 시켰습니다.
그 상식의 변화가 가장 어렵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위해야합니까 ?
교회가 세상을 위해야합니까?
교회는 늘 세상의 덕을 보려합니다.
교회는 늘 세상의 눈치를 봐야합니다.
이미 수 십년 동안 우리가 뿌린 우리의 상식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아픔을 당합니다.
벌서 10년 전입니다.
선교지를 다녀와서 한국에서 사진을 현상합니다.
사진이 많아 100만원 돈입니다.
아끼는 친구가 사진 싸게 하는 곳을 알고 더 깎아서 주문 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
그돈 그대로 주고 오라고 했습니다.
선교지에 갔다 온 사진을 믿지 않는 자에게 깎아 달라고
더 싸게 달라고 하는 것이 장사의 이론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은 교회가 세상을 위하는 것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입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원래 돈대로 드리겠다고 하니 이분이 감동이 되어
더 많은 서비스를 해주셨습니다.
무엇이 상식입니까?
상식은 교회가 세상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믿는 자 답게 사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은 지난 십 여 년의 세월이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식은 말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 상식은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 쫓는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 상식은 가르친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 상식은 생명으로만 변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야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상식을 가르치기 위해 말을 전합니다.
우리는 이 상식을 알게 하기 위해 몇 마디 말로 바꾸려합니다.
말로 바뀌는 세상의 상식이면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섬기고
하나되고 인격과 인격으로 섬기는 교회와 세상의 이런 상식은
죽어야,
생명을 내어 놓아야 그 상식이 변합니다.
그것이 무서움입니다.
어설푼 말 몇마디로 내가 사람들이 그 상식을 바꾸려 했다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그렇게하면 사람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상식이 어리석음입니다.
생명입니다.
생명이 아니면 변할 수 없는 없는 믿음 이면의 상식이기에
예수님은 오늘 죽을줄 알면서 예루살렘에서 상을 엎으시고 장사하는 자를 내 쫓으시고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배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세상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성전을 기도하는 곳으로 바꾸며
온 세상이 상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은
가르침도 배움도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상식을 위해 생명을 걸어야합니다.
그것이 상식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상식입니다.
우리는 그 상식을 또 오해합니다.
복음의 상식을 또 곡해합니다.
복음의 상식을 또 나의 상식으로 재해석합니다.
쉽게 가려합니다.
거저 먹으려합니다.
아닙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복음은 생명을 걸어야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이 상식대로 살게 됩니다.
내가 생명을 걸고 있는 것이 없다면
나는 아직 세상의 상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상식이 복음의 상식으로 변하지 않으면
나는 세상을 하나님의 상식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라는 예수님께서 우셨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사람들이 자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들이 자신의 배를 예배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할 성전이 장사하는 세상의 논리가 지배를 하고
하나님만 있어야 할 성전이 오직 사단의 논리 사단의 얼굴만 있기 때문입니다.
성정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세상의 상징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 성전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아타까움의 눈물입니다.
문제는 누구이니까?
백성입니까?
아닙니다. 백성은 말씀을 들으러나왔고 청종했습니다.
누구입니까?
누가 말씀 전하는 것을 싫어합니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47)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소위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은 나귀와 그들을 비교합니다.
나귀를 나신 예수님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를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과 비교합니다.
그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에덴의 상식을 바꾼 사람은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담입니다.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닌 곳으로 바꾼 것은 그들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도자들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할 때 그때 가장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군중이 돌아서면 그냥 군중입니다.
무리가 돌을 던지면 그냥 아픕니다.
그러나 가장 사랑하던 12중 하나가 칼을 던지면 저항도 못하고 죽음입니다.
가장 아끼던 성전을 수종들던 대제사장 지도자들이 죽이려 하면 그것이 피눈물입니다.
오늘도 고민합니다.
세상의 상식이 하나님의 상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백성이 성도가 아닙니다.
저입니다.
저의 생명입니다.
생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상식의 변화를 알기에
생명을 내어놓는 자기 십자가와 자기부인입니다.
세상에서 상식은 오직 십자가와 자기부인으로만 바뀌게 됩니다.
말로,
어줍잖은 행동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자기부인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어떤 복음의 상식도 바꿀 수 없습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고 상을 엎으시고 장사하는 자를 내어 쫓으시는
그런 생명을 건 몸부림,
생명을 건 수고가
생명을 건 십자가가
상식을 가꿉니다.
상식은 생명을 통해서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