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으면 소풍이고 없으면 방황이다 (눅19:11-27)
내가 하나님의 일을 돕나 하나님이 내 일을 도와주나?
시작은 하나님의 나라다. 누가복음 전체로 흐르는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성령은 그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각 사람에게 일하신다.
자~ 생각해보자.
내가 하나님의 일을 돕나 하나님이 내 일을 도와달라고 하나?
명분은 하나님의 나라지만 속내는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뜻을 정하고
때마다 늘 기도하는 것은 내 뜻을 위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시작이 잘못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돕기 위해 부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부름 받고 나서부터 내일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한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내가 모두 계획하고 하나님 도와주세요한다.
하나님은 모두 계획하고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돕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내가 내 인생을 계획하고 그뜻을 이루기 위해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시작이다.
이 시작이 잘못되면 이단이 따로 없다.
이단은 끝만 달라서 이단이 아니라 시작이 달라도 이단이다.
오늘 본문은 열 므나를 맡긴 종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시작은 뭔가?
예수님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오기 위해 먼 나라를 갈 때 열 므나를 종에게 맡긴 이야기이다.
시작이다.
시작은 예수님이 왕위를 가지고 돌아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 므나를 맡겼다.
이 땅은 진짜 나라가 아니다.
진짜 나라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시험하는 곳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작은 것에 충성한대로 열 므나(몇일치 일당)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열 도시의 권세를 받는다.
이전에는 시험이다.
이 땅은 테스트다. 지금 한 것은 진짜를 받는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다.
종들의 문제는 뭔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문제는 뭔가?
하나님 나라가 지금 당장 이루어질 줄 생각했다.
예루살렘에 가면 자신들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예수님이 능력으로 지금 당장 나라를 뒤집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다.
이들의 착각은
첫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착각이고(듣는 제자들과 사람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착각이다. (종이 주인에 대한 오해)
우리의 착각은 뭔가?
이 땅이 전부라는 것이다.
이 땅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시작이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함께 일하자고 불렀는데
우리는 우리의 일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이용한다.
주인이냐 종이냐의 문제다.
주인이 종에게 열 므나를 주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나
내 뜻을 위해 열 므나를 이용하는 사람이나 같다.
기억해야 한다.
열 므나는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주실 때 얼마만큼 주실지 판단하는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입사 할 때, 학교를 갈 때
이력서를 본다.
뭘 했고 뭘 했고…
그것은 회사에서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이미 가져서가 아니라 이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으니
잘 할 것으로 생각하고 조건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력서에 있는 것들이 전부라 여기면 곤란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왕위를 가지고 오시는 분이 오셔야 완성된다.
우리는 그때에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지금 작은 것에 충성한 것으로 결정하게 된다.
내가 주인행세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신을 위해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이다.
종은 주인의 일을 위해 열 므나를 받는 사람이다.
종은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목적이다.
주인의 일이 완성되는 것이 유일한 존재이유다.
모세가 주인으로 살때 다 가졌지만 다 망했다.
그가 신을 벗고 종으로 살때 그는 위대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주신 뜻을 위해 내가 수종을 드는 것이지
내 뜻을 위해 하나님이 수종을 드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오늘 하루를 사는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내가 일하나
나의 뜻을 위해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나?
주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 했다.
왜?
주님의 것은 이 땅에서 하나도 없다. 적어도 왕으로 오기 전까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사람들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종이다.
주인이 따로 있다.
므나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진짜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권세를 얻기위한 판단근거이다.
이 땅에서 주인행세하고 살고 그것으로 끝을 낼 것인지
오는 나라에서 주인으로 권세를 가지고 살 것인지는
지금 작은 것에서 결판이 난다.
내가 내 뜻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내가 이용당하나?
열심의 문제가 아니다.
한 므나를 가져온 종이 아무것도 안했다고 열심히 안했다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주인에 대한 오해,
종으로서의 시작이 잘못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지금 사는 것으로 진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지금 내가 주인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도와 달라고 한다.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이용하셔야 한다.
오늘 내가 하나님께 이용 당하고 있는 것이 뭔가?
그것이 없다면 나는 아직 주인이다.
열 고을 권세는 없다.
왕 됨을 원치 않은 죄나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주인 행세한 사람이나 이 땅에서 한 것은 다 소용이 없다.
인생은 돌아갈 곳이 있으면 이 땅은 소풍이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으면 방황이다.
이 땅이 끝으로 여기고 주인으로 살지 말고
영원히 살 땅 바라보고
종으로 살아야 한다.
이용 하지 말고
이용당해야 한다.
하나님을 내 손에 넣었다 뺏다 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한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작은 것이다.
작은 생각이다.
작은 시작이다.
시작을 잘해야 한다.
오늘도 내가 계획하고
내가 뜻한 대로 살려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작은 것이다.
소풍입니다.
그냥 소풍입니다.
소풍을 가면 그냥 놀면 됩니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냥 소풍입니다.
소풍을 목숨걸고 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소풍에
집도 걸고
친구도 걸고
돌아갈 집도 다 거는 친구가 있습니다.
소풍인데
그냥 소풍인데 말입니다.
가장 안좋은 추억은
소풍날 친구랑 싸운 기억입니다.
친구를 잃어버린 기억입니다.
소풍입니다.
그냥 소풍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으니
그냥 소풍입니다.
내 짐이 무겁지도
내 멍애가 어렵지도 않습니다.
엄마 아버지 싸준 도시락
맛나게 먹으면 됩니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면
어울렁 더울렁
웃으며 함박꽃을 피우면 됩니다.
갈 집이 없으면
소풍은 방황이 됩니다.
소풍처럼 좋은 놀이가
돌아갈 집이 없으면 방황이 됩니다.
아닙니다.
집이 있는데
집에 가려하지 않고
소풍에 전부를 거는 친구가 마음이 아픕니다.
집도 걸고,
친구도 걸고,
목숨도 걸고 소풍을 소풍이 아니라
방황하는 친구를 보면 마음이 아픔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물입니다.
소풍이 소풍이 아니라
방황하는 친구들 때문에 눈입니다.
그 눈물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방황하는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물입니다.
그래서 나의 소풍은
무겁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내 눈에 눈물입니다.
(아내입니다.
소풍을 즐기는
그래서 눈물의 주인 때문에 함께 눈물 흐리는
내 소풍 친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