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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면 믿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면 믿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면 믿음은 없습니다(18:35-43)

 

하나님과 연결되는 !

 

그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으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스스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만드실

오직 믿음으로만 반응하도록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어떤 영적 세계로 세상이 움직이도록 법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그것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노린 것은 선악과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의 믿음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함을 정확하게 압니다.

하와부터입니다.

하와는 말에 약합니다.

그래서 말로 접근합니다.

아담은 하와에 약합니다. 그래서 하와를 이용합니다.

 

그들이 범죄한 것은 선악과가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믿음을 잃었습니다.

믿음을 잃은 결과가 선악과를 따먹음입니다.

선악과는 믿음을 잃은 것에 대한 확증일 뿐입니다.

 

세상은 믿음으로만 움직이고

하나님과는 믿음으로만 반응하도록 만드셨는데

믿음을 잃고 하나님도 잃고 영생도 잃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영생은 오직 믿음으로 옵니다.

 

오늘 여리고를 가다 만난 맹인에게 확인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기적이든지 믿음에만 반응합니다.

예수님이 하실 없는 일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일하지 않습니다.

아니 일을 못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도록 먼저 환경을 만드시고 그리고 믿음을 확인하시고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맞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일이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반응할 때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입니다.

왜냐하면 창조부터 하나님은 믿음의 구조 안에서만 영생을 주셨고 능력을 주셨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언제 올까요?

세상적으로 절망이 와서 세상이 보이지 않을 보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법칙입니다.

 

세상이 보이지 않아야 믿음이 옵니다.

세상 것이 손에 있으면 믿음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심령이 가난함이라 했습니다.

 

맹인에게 세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신비입니다.

세상적으로 정상일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믿음의 나라입니다.

세상적으로 어둠이 ,

세상이 보이지 않을 믿음이 보입니다.

 

바울입니다.

바울이 믿음을 것은 그가 세상을 보지 못할 때입니다.

세상적으로 절망이 오고

자신의 ,

자신의 능력이 끊어질 입니다.

 

세상의 영은 질깁니다.

우리가 어떤 조그마한 소망이 있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끝까지 붙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소망이라도 붙들어야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끊어지면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너무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전제는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인의 믿음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먼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철저히 계산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나오고 다음 이야기가 이야기 뒤에 나오고~

 

죽음을 지나야 믿음입니다.

십자가가 지나가야,

죽음을 지나가야 믿음의 부활이 옵니다.

 

죽지 않고 생기는 믿음은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절망의 시간,

세상적으로 소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시간을 지나야

믿음이 싹을 트게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맹인은 길을 가다가도 믿음으로 주를 보게 되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옆에 있어도 믿음의 주요 부요케하시는 주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눈이 띄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자꾸 살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자꾸 열심히 살면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나는 소망이 없습니다.

철저히 부패하고 철저히 소망이 없다고 느껴질

그때 소망이 믿음 안에서 보입니다.

 

세상이 소망 없음으로 찾아올 믿음으로 주를 봅니다.

 

부활은 죽어야 경험합니다.

믿음은 세상의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부활을 경험할 없습니다.

눈을 뜬채로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완전한 절망을 통해

주님은 완전한 소망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면 거기에는 믿음은 없습니다.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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