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지 말라(눅18:15-17)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생각은 이미 세상적을 변했다.
어떻게 계산하고 판단하고 합리와 이성으로 접근한다.
...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결론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계산을 해보라고,
따져보라고,
잘 판단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거기에 천국의 기적이 없다.
오늘 본문은 어린아이와 부모가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원해 가까이 왔다.
그런데 제자들 즉,
세상사람들의 대표들인- 부활의 주님과 성령을 경험하기 전까지의 - 제자들은
그 아이들을 예수님께 오지 못하게 막았다. 막을뿐 아니라 꾸짖었다.
여기서 에피티마오는 꾸짖다라는 원어인데
비난할 뿐 아니라 훈계하고 따졌다는 말이다.
즉 세상의 대표인 제자들은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들의 사업을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꾸짖고 훈계하고 따졌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어린아이에게 조차도 자신들의 합리와 이성으로 접근하는 세상의 방식을 들이댄다.
왜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나?
왜 어린아이같이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나?
원리이다.
천국의 원리이다.
세상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의 싸움이다.
단순하게 어린아이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허락하라는 말씀에서
압히에미라는 용납한다는 말은
용서하고, 허락한다는 뜻이다.
누가 하나님 나라는 용서받고 허락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다.
누가 허락되고 용서 받는가?
계산하고,
따지고,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곧 세상의 의 식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다.
꾸짖을 때 했던 에피티마오의 상태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용납하라 즉 압히에미로 받으신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든 뭐든 어떤 일을 접근할 때
따지고 계산하고 판단하고 합리와 이성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천국이 없다.
천국은 오직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합리와 이성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믿고 그냥 받는 사람의 것이다.
어린아이의 모습 즉
그냥 아무 계산 없이 예수님께 왔던 어린아이처럼
아무 계산하지 않고 복음과
예수님과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계산하는 곳이다.
죄의 시작은 뭐라했는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 했다. 죄가 장성한즉 사망이라 했다.
거꾸로 가보자.
사망은 죄에서 왔다.
죄는 어디서 왔나?
욕심에서 왔다
욕심은 어디서 왔나?
????
욕심은 어디서 왔나?
비교이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시작이다.
아담의 범죄의 시작은 비교이다.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한 것에서 죄는 시작되었다.
믿음이 어떻게 생기지 않는가?
비교하면 생기지 못한다.
따지고 계산하면 거기에는 믿음이 없다.
따지고 계산하고 합리와 이성의 본질은 비교이다.
아담의 죄,
세상의 타락의 시작은 비교이다.
그런데 오늘 그 비교의 가장 핵심 인물들이 제자이다.
가장 예수님 곁에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을 누리는 제자들이지만
가장 세상적인 무리가 제자들이다.
왜?
뭔가 은혜를 맛보고
뭔가 높은 자리를 맛보고
뭔가 기적을 맛본 사람들이 더 비교를 많이 한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이 더 높은 곳을 탐내고
한번 맛을 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누리길 원한다.
아담은 세상을 다 가지고 다 누린 상태에서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하므로
죄 즉 믿음을 버렸다.
비교의 시작은 믿음을 버리는 행위를 낳는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들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 비교를 없애라는 것이다.
따지고 계산하던 제자들처럼이 아니라
계산 없이
순수하게 말씀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상태를 이야기 한다.
어린아이들은 먼저 예수님께 순수하게 나아오기를 원했던 아이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특징은
아니 타락하면서 세상은 마귀의 말처럼 눈이 밝아 합리와 이성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기에 반대의 개념 즉 합리와 이성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새 법을 만드셨다.
타락한 세상과 반대되는 개념을 통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길 원하셨다.
왜 예수님이 죽어야 하는가?
아담인 더욱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살려 하면 죽어야 된다는 법을 이 세상에 주셨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했다.
합리와 이성으로만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세상에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새롭게 들어가도록 만드셨다 .
높아지려는 세상에
낮아져야만 높아지도록 역설의 법을 세우셨다.
큰 자는 더 많이 가진 자 더 높이 있는 자가 아니라
큰 자는 더 많이 섬기는 자,
더 많이 낮아지는 자가 되도록 하셨다.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법과 반대로 간다.
절대 오지 않을 아이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게 하시면서
상징적으로
합리와 이성으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어린아이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법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라는 말은
어린 아이가 예수님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가고자 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순수하게 받아 들이는 자만이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계산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따진다.
우리는 너무 많이 합리와 이성을 빙자해서
의심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해서
기도의 응답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게 만든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포세포가 이미 따지고 계산하는 합리와 이성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천국은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곳에 있다.
한가지 간증을 하려한다.
지난 12월부터 너무 무리를 했는지 아니면
정말 몸이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몇개월동안 대장에 문제가 있었다.
증세를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변을 봐도 뭔가 이상하고
계속 어떤 혹 같은 것이 있는듯한 느낌을 가지고 몇 개월을 지냈다.
그리고 변도 하루에 몇 번씩 보고
봐도 뒤가 이상한 상태가 오래갔다.
병원을 갈수도 없고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보니 대장에 분명히 문제가 생긴 것이 맞았다.
한국을 가야겠다까지 생각을 했으니 상태는 심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믿고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기도하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순수하게 믿고 이미 믿고 구한 것은 이루어진 줄로 믿고 기도해보자는 것이다.
합리와 이성적 접근을 많이 하는 나의 머리로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기도는 그렇게 했고,
정말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루셨고 다 없애셨고 나았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모든 것이 나았다.
이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것도 이제는 문제가 없다.
다 나은 것이다.
할렐루야~~
이 같은 기적은 작년 8월에도 있다.
다음에 간증하기로 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그냥 믿으라 하면 믿으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천국을 허락하신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더 많이 계산하고 더 많이 판단하고 더 많이 합리와 이성을 동원해
하나님에 관해, 예수님과 성령님에 관해 생각한다.
그것을 버려야한다.
그냥 구한 것을 받을 줄로 믿으라는 말씀은 어린아이 같이 그냥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어려운 일이 있는가?
기도의 제목이 있는가?
몸에 문제가 있고 사업에 사역에 문제가 있는가?
주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에 문제가 있다.
믿고 구한 것은 이미 이루어 진줄 믿고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내 안에 이루어진줄 알게 될 것이다.
* 천국은 어린아이같이...
어려서가 아닙니다.
어린아이 같이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윗뱅크교회 아이들과 함께 수빈이 입니다.
수빈이가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순수성을
지켜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