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마음에 드는 답이냐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누가 제시한 답이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이 올때 살펴봅시다.
세상에서부터 온건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온건지..."
... -이성수목사님 5월3일 묵상 중에...
썬글라스를 벗어라
눈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 눈에 세상적 필터가
세상적 썬글라스가 씌어져있어서 입니다.
아무리 말하고
아무리 보여줘도
눈에 썬글라스를 끼고 있으면
세상이 그럴듯해 보입니다.
세상이 멋져보입니다.
사탄이 한것은 오직 우리의 눈에
썬글라스를 준것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썬글라스를 벗는 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못하니
성령께서 조명하십니다.
그냥 벗으라고 하니 안벗고 버티니
물에 빠듯립니다.
숨을 못쉬게합니다.
물에 빠지고
숨을 못쉴만큼 아픔이 와야
고집스럽게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던집니다.
우리의 일은
세상이준 썬글라스,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하고
세상을 그럴듯하게 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하는 썬글라스를
별일 없을때 벗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가난함을 쓰십니다.
우리의 없음을 쓰십니다.
우리의 형편없으을 쓰십니다.
오직 썬글라스를 벗는 일에 쓰십니다.
우리의 일은 오직 썬글라스를 벗는 일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이정표를 보는 것이 다입니다.
썬글러스를 벗어야 세상의 본질이 보입니다.
그것 하나 벗는데
어떤 사람은 40년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평생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죽어도 못 벗습니다.
아이들이 이 썬글러스를 쓰지 않게 해야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교육입니다.
아무리 다른 것 다 줘도 이 썬글라스 하나 주고 나면
끝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썬글라스를 쓰고 있으니
순수한 아이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불안해보이고
믿음대로 사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것 뿐입니다.
하늘이 참 이쁘다고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썬글라스 없는 하늘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썬글라스를 낀 하늘을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썬글라스를 낀 예수믿음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썬글라스 없는 참 예수를 생각합니다.
11명의 제자에게 예수님이 한 것은 이 썬글라스를 억지로 벗는 일을 했고
1명의 제자는 그 썬글라스를 죽을 때까지 벗지 않았을 뿐입니다.
같은 복음 다른 세상입니다.
믿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썬글라스를 낀 복음은 더욱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복음이 됩니다.
썬글라스를 벗어야합니다.
세상적이며
세상의 영이 선물로 준
보기에 좋고
가지기에 좋은
자랑하기에 좋은 그 썬글라스를 벗는 것이
열심히 사는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썬글라스를 낀 바울은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열심이 사람을 죽일수 있습니다.
내 눈에 덧씌운 다른 필터가
나의 열심을 통해 사람을 죽일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지 맙시다.
적어도 이 썬글라스를 벗을때 까지는…
성령의 일은 이 생각의 교정,
썬글라스를 벗는 일을 먼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라고 이것 안벗으려고 버티는싸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세상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성령과의 날마다의 싸움입니다.
벗기려는 성령과
벗지 않으려는 우리의 옛 자아의 싸움일 뿐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를 전쟁터에 내 보내기 전에
사복 즉 양복, 케쥬얼복, 운동복, 수영복을 벗어야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옛 옷을 벗게 하고
우리는 안 벗으려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벗고 군복을 입어야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무기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옷도 벗지 않고 무기부터 달라고 합니다.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무기를 주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십니다.
벗어야합니다.
걸친 모든 옷을 벗어야 성령으로 덧입습니다.
썬글라스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본질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담은 아담 그대로였을 뿐입니다.
문제는 아담이 변한 것은 오직 사단이 준 썬글라스
생각의 썬글라스를 ?을 뿐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은
오직 썬글라스,
세상적 썬그라스가 우리를 잡고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아픔은
이 썬글라스를 벗는 간단한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스스로 벗지 않으니
스스로 벗도록 아픔도 고난도 눈물로 허락하십니다.
얼마나 아프실지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압니다.
내 살이 아니어도 내 살이 아픈것보다 더 아픈것이 자식의 아픔입니다.
그 자식을 아파하면서까지,
그 자식을 눈물흘리게 하면서 까지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눈에 귀에 썬글라스를 벗게 하는 것입니다.
벗어야 살 수 있습니다.
던져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한 삶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