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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때와 장소가 아니다

종말은 때와 장소가 아니다

 

 

 

 

 

 

 

 

 

종말은 때와 장소가 아니다. (눅17:26-37)

종말은 때가 아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때를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가 아니라 공간으로 설명하셨다.

... 그리고 마지막에 일어날 일을 설명하자 제자들이 공간으로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다는 이상한 소리로
마지막때를 설명하고 마치신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종말은 삶이지 때가 아니다.
종말은 형체가 아니라 공간이다.
종말은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 나의 삶의 현장이다.

바리새인의 하나님 나라의 때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때를 맞추어서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속, 너희 삶의 공간으로 임한다고 설명하셨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가지 말고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이유는 예수님의 임함은 노아의 때,
롯의 때와 같이 한 순간에 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고
그 때를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문제라고 결론을 내셨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지금 이순간 사는 것이지 다른 곳에 다른 이유로 다른 어떤 것을 좇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으면
종말은 의미가 없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실존적 삶인데
실존적 삶은 미래적 종말을 이긴다.

종말론자들은 지금보다 나은 어떤 것을 기대한다.
지금 이루지 못하는 어떤 것을 종말을 통해 이루어 보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종말론자들에게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보상심리이다.
지금 내가 아는 때,
지금 내가 아는 어떤 선지자,
지금 내가 아는 어떤 교회가 종말에 선택을 받고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가 깔려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말론자들은 어느 한 시점을 정해서 그 시점을 위해
전부를 걸고 전부를 포기하고 전부를 바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한 때가 아니라
어떤 다른 장소가 아니라고 하신다.
지붕에서 내려가지 말고,
밭에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다.
그 말은 때도 장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한 사람속이 천국이고 종말의 장소고
그리스도가 임하는 곳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내가 있는 곳에 종말 즉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잠을 자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고
맷돌을 갈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

무슨 말인가?

종말은 다른 어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말은 다른 어떤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말은 내가 잠자는 곳,
종말은 내가 일하는 곳이 종말이 임하는 곳이고 때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의 준비는
지금 내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면 지금에 전부를 걸고
살려고 어떤 장소,
어떤 때를 기다리면 죽게 되고
죽음을 각오하고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면 영원히 살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종말은 평범한 날에 온다.
평범한 날은 즉 종말이다.

그 평범한 날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종말적 삶이다.

예수님은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
그것이 예수님의 답이다.
예수님의 관점은
지금 너희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거는 것이
우리가 정말 종말에 데려감을 당하는 비결이지
어떤 장소와 때를 준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말은 지금이다.
지금이 곧 종말을 결정한다.

때와 장소를 구하는 것은 보상심리를 구하고,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없다는 불안함의 표현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린다.

그 누림은 지금 이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을 전부로 여기며 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신앙은 일상입니다.
그러나 주를 향한 일상입니다.
나를 위해서 사느냐 주를 위해서 사느냐가
데려감을 당하느냐 버려둠을 당하느냐로 결정될 뿐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했습니다.

같은 일상을 살지만
같은 잠을 자지만
같이 밭을 매지만
왜 사는지,
왜 먹는지,
왜 자는지,
왜 일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죽어야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그것이 종말의 결론입니다.

모두 장가가고 시집가고
먹고 마신다 했습니다.
평범한 날입니다.
그 평범한 날 살기 위해서
장가가고 시집가고
살기 위해서 먹고 마시면 결국 버림받습니다.

죽기 위해서 장가가고 시집가고
죽기 위해서 먹고
죽기 위해서 마시고
죽기 위해서 일해야합니다.

믿음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내가 죽어야 성령이 일하십니다.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서 주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내가 죽어야 사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죽어야 의가 되고
내가 죽어야 평강이 임하고
내가 죽어야 희락이 임합니다.

그것을 모르니 날마다 살려합니다.
사는 곳에는 하나님 나라도
종말의 데려감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은 자신의 죽음을 지나야 한다 했습니다.
고난을 지나야 한다 했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종말을 대하려합니다.
내가 죽어야 믿음이 일합니다.
거기에 참 종말의 데려감이 있습니다.


* 아프리카의 평범한 일상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입니다.
석양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의 내일을 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