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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포기가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포기가 아닙니다 선택입니다.(눅14:15-24)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누가 떡을 먹습니까?


... 간단합니다.
부를 때,
청할 때 오는 사람입니다.

누가 오지 않습니까?
자기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밭을 산사람,
소를 산 사람,
장가를 든 사람입니다.

공통점은 다 자기 것,
자기 생각에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밭입니다. 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 자기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잠깐 포기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사도들이 사도가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이 왜 아브라함이 되었을까?

청할 때,
부를 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치 있다 여기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고,
자신을 포기했고,
아비와 배와 그물을 그리고 자신의 익숙한 것들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청함은 다른 말로
나의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더 가치 있는 것의 선택입니다.

포기가 아니라 더 가치 있는 것의 선택~

우리는 포기라고 여깁니다.
물론 포기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 들어오면
더 가치 있는 것에 붙잡혀서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꺼이 하는 것이다.

보물을 발견한 장사와
진주를 발견한 상인처럼 더 가치 있는 것에
전부를 거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가치보다 자신의 가치를 더욱 귀하게 여기는 자는
천국의 잔치를 맛보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천국의 잔치가
사람들이 가진 가치보다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데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서입니다.

천국의 가치보다
자신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천국에 합당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오직 자신의 가치만 보는,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붙들고 있는 것의 가치만 보는 사람과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를 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치를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치,
부르심의 가치로 우리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곧 가치입니다.

누구라도 부르신 사람들,
가난하고,
절고,
말 못하고
보지 못하고
세상에 가치 없다고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가치는 부르신 자들의 가치로 인정됩니다.

내가 나의 가치를 매기면 나 만큼의 가치를 가지지만
부르신 자의 가치를 따르면
부른신 자의 가치만큼이 되는 것입니다.

별것 아니지만
내가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학위가 있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스스로 가치를 매깁니다.
내가 경력이 있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스스로 가치를 계산합니다.
내가 업적이 있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스스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내가 뭔가를 이루었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스스로 매긴 가치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아담의 실수는 자신의 가치가 스스로 이룬 업적으로 매기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짓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니
자신의 가치를 흙이 아닌 하나님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되려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가치는 오직 흙입니다.
밭도 흙이고
소도 흙입니다.
장가든 여자도 그냥 흙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가치가 발생합니다.
불러야 가치가 생깁니다.
부르지 않고 호흡을 넣지 않은 곳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가치 없는 흙의 부산물들을 가치 있다 여기고
하나님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니
하나님은 하나님과 가치를 바꾼 사람을 잔치에 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치,
부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과만 이야기하고 먹고 마십니다.

함께 먹던 사람 중 한 사람의 말처럼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사람입니다.

함께 먹을 자격은
부르신 사람의 가치를 다른 어떤 것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은
자신에게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르신 자를 가치 있게 여기고 잔치에 청합니다.

없는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중간하게 똑똑하고
어중간하게 경험이 있고
어중간하게 실력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봐야 밭이고
소고
사람입니다.
다 흙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흙으로 볼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태초부터 부름에 대한 가치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에서 부르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령을 넣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부름의 가치를 만나서 영원이 됩니다.
그리고 아담도 흙으로 되어진 것들에 이름을 부를 때 그 가치를 부여 받게 됩니다.

부름이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주실때 이름을 부르십니다.
청하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모세야 모세야~
사무엘아 사무엘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리고 영원의 이름이 남는 모든 조상들은 그 청함에 응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흙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고 살지 않습니까?
밭이고
소고
재산이고
능력이고 다 흙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흙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르실 때
청하실 때 응답하는 순간 우리의 가치는 영원이 되는 것입니다.

흙에 생명이 들어가 영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입니다.
이제 흙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의 가치로 부르시는데
우리는 흙의 가치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은 가치가 같은 사람과만 먹고 마십니다.
가치가 다른 사람과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내일 성경은
어떻게 그 가치를 가치 되게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넉넉한 선택입니다.
부모나 처자와 형제 자매 그리고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제자의 삶을 선택하라고 시고
선택을 위해 망대 이야기를 통해 계산해 보라고 하십니다.
임금이 전쟁할 때 계산하는 것 같이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가치를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합니다.
이유는 포기가 아니라 가치를 따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
세상은 흙인데 그 흙의 가치를 따를 것인가
영원의 가치를 따를 것인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잡고 있는 것은 흙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것은 영원입니다.
우리는 늘 흙과 영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포기가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전도하러 갔습니다.
한 노인이 한손은 주먹 한손은 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어 생각하게 합니다.
선택과 포기
영원을 나눕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