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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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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완전(눅13:31-35)

우리는 세상에 일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부분적인 일이 있고 완전히 이루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수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내일은
...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고합니다.
죄송합니다. 영어로는 I will reach my goal이라고 표현했고,
원어로는 텔레오마이라고 했습니다. 완벽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루를 사며 부분적인 일이 있고 완벽히 이루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은 완벽을 위해 부분적인 일들을 조절하고
부분적인 일 때문에 완벽한 일을 거르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오늘 아침 차 서비스를 받기 위해 차를 맡기고 한 시간 반을 걸어서 집에 왔습니다.
오면서 가을이 되면서 나무들이 떨어뜨린 낙엽들을 보았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이쁜 잎을 왜 나무를 버릴까?
그런데 너무 간단합니다.
낙엽의 입장에서 잎이 떨어진 것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입을 버린 것입니다.
나무는 올해가 끝이 아닙니다.
오늘이 끝이 아닙니다.

내년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 큰 자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람을 위해서 잎들을 버려야합니다.
아무리 이뻐 보여도 아무리 애정을 들였다 해도
더 큰 완벽한 아름다움과 뜻을 위해 자람을 위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완전하여 지고 완벽한 목표를 이루는 모든 것의 자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병도 고치고 귀신도 고쳐서 사람들의 인기도 얻고
사람들의 표현으로 메시야라고 칭송을 듣습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완벽, 완전은 그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죽음입니다.
그래서 33절에서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완벽은 인기를 넘어 수고를 넘어 군중을 넘어
죽음입니다.

죽음까지 가야 완벽해지고 완전해지고 완전한 하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부분에 미련을 둡니다.
작은 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조금 이쁘면,
조금 좋아 보이면,
조금 근사해보이면 자꾸 그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나무는 잎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이뻐 보여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년을 봅니다.

우리는 자꾸 지금 좋은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잡혀 완벽한 일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합니다.

잘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쁜 것 잡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이나 병이나 고치는 것으로 인기를 잡으려 했다면
그냥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넘어 완벽을 향하여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좋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더큰 완벽한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나마 버릴 용기도
힘도 나는데 그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알아도 지금 것이 너무 이뻐보여
그것을 향하여 가기 싶어서이기도합니다.

모르기도하고
지금 것이 좋아 완벽을 향하여 나아가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완벽을 향하여
그분의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를 만난 모든 사람에게는
이 하나님의 goal 이 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오늘 우리가 보는 모든 좋은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 좋은 낙엽이 아니라
영원히 푸른 푸르름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