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는 만큼 하나님은 대우하신다(눅12:22-34 )
우리가 믿는것 만큼 산다.
부자와 유업을 나누는 자의 생각은 하나님을 없다하든지 예수님을 겨우 물질에 문제를 해결하든지 나누는 정도로 생각했다.
믿는바 대로 사는 것이고 믿는바 대로 이루어지고 어떤것은 믿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그리고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여기느냐로 하나님은 나를 대우하신다.
까마귀보다 귀하다 여기면
백합화보다 귀하다 여기면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귀하게 일을 이루신다.
이미 귀한데 귀하지 않고 겨우 먹고사는
시시한 존재로 여기도 살면
믿음은 그 믿는바대로 내가 되고
믿음은 구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책망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무게만 계산하신다.
하나님은 믿음으로만 반응하신다.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신 세상은 믿음으로 사는 세상이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일도 하지 않으신다.
흙이 생기가 되는 것은 믿음 즉 생령이 존재해서이다.
믿는자 즉 생령이 있는자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내 먹고 입고 마시는 것으로 안다.
무슨 말인가?
믿음 없음의 증거는 내가 내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 내가 내것 책임져야하니까
먹고 마시고 입는 세상적 물질에 매인다.
내가 나를 믿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이것 책임지신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내것 구하고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정말 하나님 믿는 것이다.
물질에 믿음이 없으면 아직 하나님 믿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재주가 있으면 사역도 어느정도 크게한다.
사업도 어느정도 잘한다.
인기도 있고 먹고사는것 고민하지 않고
자녀도 잘될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오직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안에 생명이 있는 증거다.
내가 나를 시시한 사람으로 믿고 시시한 것만 구하면 시시한 인생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물질을 초월한 세상을 초월한 사람으로 대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한것 구하는 인생이 아니라고 좀 믿으라고 외치신다.
내가 나를 어떤존재로 믿느냐가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믿느냐가 결정된다.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는 귀한 자로 믿으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귀함을 증명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 보여야한다.
내가 나를 어떻게 믿느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