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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따라야 할것은 말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것은 말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성령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유는 내 마음을 따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따르기 때문이다.

누룩 즉 외식하게 되는 이유는 성령과 동행하고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누룩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끝을 낸다.
외식하고 사람들 앞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 사람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성령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경험치 못하고
날마다 성령의 임재 앞에 서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서 주님은 말로 거역해도 용서받지만
성령을 거역하면 끝이라고 말씀하신다.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몰라서 두려워하지 못하나?
지식이 없어서 못하나?
신학이 없어서 못하나?
아니다.
성령의 임재 앞에 서지 못하니 두려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영혼의 감각,
영혼의 두려움,
영적인 충족감이 없으니 육체 즉 겉을 따라간다.

사람은 성령을 만나고 경험하기 전까지
세상의 기준에 반응하고 세상의 감각에 길들여 있다.

그 기준의 변화가 이제는 성령을 만남으로
성령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부인하지 않으려고
두려워 하지 않으려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율법의 법으로 돌아가지 않아야한다.

오직 성령의 기준 앞에
나의 느낌과 생각과 방향을 잡아야한다.
외식으로 시작한 말씀이 성령으로 결론을 맺으시는 이유이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른 것을 보내시지 않고
오직 성령을보내신 이유다.

기준의 변화는 나의 열심이 아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또 율법으로 나를 채찍질하지 말라.
외식은 노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임재로
성령의 함께하심으로 이루어진다.

* 사진은 너무 이쁜 꽃이다. 그런데 이 나무는 몸통부터 모든 가지가 가시다.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쁜 꽃에 가시를 주셨나 불평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가시나무에 이렇게 이쁜 꽃을 주셨다고 감사한다.

성령은 생각의 변화를 가장먼저 가져온다.

성령 임재의 증거는 기적이 아니라 내 생각의 변화이다.

기적은 다른것이 아니라 내 생각,

죽은 내 생각이 성령의 생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생각의 부활이 없는 곳에 육체의 부활도 없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