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눅10:17-24)
누가복음 10장은 제자들이 어떤 특권을 누리는지 설명한다.
그 내용은 귀신을 제어하며, 병든자를 고치며, 가는 곳마다 영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뱀과 전갈과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되고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런 특권을 제자들이 누리게 된 것에 이유를 예수님은 한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1. 제자들은 어린 아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10:21)
지혜롭고 슬기 있는자와 어린아이를 대조하고,
많은 선지자와 임금들과 제자들을 대조하고 있다.
그들은 듣고자 했고 보고자 했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데 제자들을 향하여 보고 듣는 너희가 복이 있다 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특권과 복을 누리는 이유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진 자를 복되다 한다. 그래서 가지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는 자가 복되고 듣는 자가 복되다 하신다.
복의 기준이 다르다.
이유는 뭔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왜 복인가?
그것은 허락 되어진 사람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눅10:22)
단순한 진리이나 보고 싶다고 보고 듣고 싶다고 듣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는 것은 예수님의 소원을 따라 듣고 보는 것이다.
소원은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선택되어진 사람만 보고 듣는 이 축복이 진정한 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 보고 듣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린 아이이다.
21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 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도 "성령을 기뻐하사"라고 하시면서
그 기쁨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성령으로 기뻐하셨고 그것이 감사하다고 하셨다.
예수님에게 기쁨이 무엇이고 감사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제자들 즉 어린아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알게 하시는 것이 기쁨이다.
그리고 그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식도 능력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분이다. 그런 분에게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의미가 없다.
어린아이의 속성이 무엇인가?
절대 자신이 주인, 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둘째, 자신이 잘 모른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자신이 낮은 자리에 있다.
셋째, 절대적 의존성이다. 자신이 아니라 부모 즉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넷째, 절대적 수용성을 가진다.(눅18:16)
상대적으로 슬기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속성은 무엇인가?
절대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 주인 되려 한다.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길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절대 섬기지 않는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섬기지 않는 것이다.
아니 섬기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셋째, 절대적 자기의존성이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에 온 형벌이다.
자기가 일하고 자신을 믿고 자신의 힘을 믿도록 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 세상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신을 절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넷째, 수용성이 없다. 아무리 말하고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가 가장 잘 받아들이는가? 어린아이들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죄인이라 스스로 여기는 자들이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오늘 말씀의 배경으로 볼 때 수용성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말씀하신다.
천국을 받아들이는 자 들에게 천국은 찾아온다.
그리고
2. 아버지의 뜻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10:21)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복이다.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이다.
아버지의 진정한 뜻은
천국을 받아들이는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자신이 생각을 내려놓는 사람에게
보게 하고 듣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이라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음 즉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과 마을이 마지막 때에 두로와 시돈보다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이유는 하나다 그들에게는 수용성이 없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 그것이 생명과 죽음을 가른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18:17)
하나님이 뜻은 어린아이들에게 보게 하고 듣게 하고 천국의 능력을 주는 것이다.
그 어린아이들은 수용성이다.
수용성을 가진 자들은 복된 자들이다.
그래서 고난이 아픔이 슬픔과 인생의 짐을 통해
천국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의 문을 열게 했다면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마음 아픈 사람들은 아픔의 시간,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수용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수용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어린아이의 특성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천국의 능력을 가지게 하는 힘있다.
우리는 지식과 능력을 먼저 가지려 한다. 아니다 지식과 능력은 다음이다.
먼저 수용성이다.
제자들의 특징은 단순하게 천국 복음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하라면 했고, 가라면 갔다.
그것이 능력을 가져온다.
우린 너무 복잡하다.
너무 계산한다.
능력과 합리와 이성으로 일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복된 것이 아니라
그냥 보낼 때 가는 사람,
그냥 말씀할 때 따르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이라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용성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말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에 전부를 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은 어린아이같이 수용성을 가진 사람이다.
아픔이 복이되고 슬픔이 복이되고 환란이 복이 될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상태가 하나님에 대하여 폐쇄적인 상태에서
수용적인 상태로 변화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고난은 변장한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난이 변장한 축복이 되려면
하나님에 대하여 수용적인 마음상태가 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