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34-46)
말은 보이지 않는 내 믿음의 얼굴이다
말은 그사람의 인격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진정한 그사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게 되었는가?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말이다.
34절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백성이 왜 광야에서 다 죽었는가?
죽겠다 죽겠다 하다가 다 죽었다.
목이 말라 죽겠다,
무서워 죽겠다,
고기가 먹고 싶어 죽겠다,
마늘을 먹고 싶어 죽겠다.
"죽겠다죽겠다" 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럼 진짜 죽어라 그러셨다.
'그들의 말소리를 들으사'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믿음대로 대우하신다.
하지만 그 믿음의 외적 증거는 말이다.
말은 보이지 않고 보여줄수 없는 내 마음속 믿음의 얼굴이다.
말은 내 믿음의 증거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특권을 주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한다.
나에게도 그런 능력을 일찍부터 주셨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축복하면 축복을 받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먹으면 그사람에게 좋지 않을 일들이 어김없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시는가?
우리의 믿음대로 대우 하신다.
그 믿음은 어떻게 현실에서 증명되는가?
바로 말이다.
우리가 말할때 하나님의 행동대장들이 그렇게 미래의 길을 열고 그 길대로 인생을 인도하게된다.
물론 그 말은 우리 마음에 받은바 믿음의 길대로 고백하게 된다.
말한번 잘못하면 40년을 방황한다.
그 말은 내 생애에 의무 방어 말고는 할수 있는것이 없다는 말이다.
적극적으로 도저하고 시도하고 모험해서 자신과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고 자라는 것을
볼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어떤 집사님이 계셨다.
이분은 형편이 아주 좋았다.
좋은차에 좋은 집에 넉넉한 형편에 마음껏 쓰는 재물과 걸림없는 성격으로 그분은 말을 늘 쉽게 하셨다.
그래서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말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물질 다 날라가고 남편 병들고, 어디 갈데없어 여기저기를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믿음은 말로 증명이 되고 하나님을 그것을 근거로 40년을 방황하게 하셨다.
말은 곧 내 믿음이다.
어떤 사람은 말을 하면 두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내 자랑 아니면 다른 사람 욕'
왜 그렇게 자기자랑 아니면 다른 사람을 욕하는가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 자기 밖에 없어서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고 인도하신 믿음이 없다.
내가 잘해서 왔고 내가 잘해서 잘 가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의 공통점은 세상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서울것이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유기하신다.
이런 사람의 결국은 패망이다.
결국 이런 사람은 자기 세대에 가나안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
그저 반복하다가 죽는다.
여기갔다가 저기 갔다가 결국 제자리이다.
한마디로 영적으로 방황이다.
광야에서 돌다가 하나님의 진정한 영적 축복을 보지 못한다.
말에 실패한 사람은 믿음에 실패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싸워도 승리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을 향하여 나아가지만 그들이 벌떼와같이 일어나서 쳐서 통곡한다.(44)
그리고 통곡하고 여호와께 울부 짖어도 하나님은 그들이 소리를 듣지 않으신다.(45)
말에 실패하면 믿음에 실패하고 - 사실 믿음에 실패해서 말에 실패한것이다-
믿음에 실패하면 모든것을 실패하게 된다.
광야에서 여기저기 열심히 돌지만 결국 광야이다.
믿음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말에 실패하게 된다.
말에 실패하게 되면 무서운것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나와 상관없는 분이 되게 하고 싶은가?
그럼 말을 잘 못하면 된다. (42)
그럼 하나님께서 나와 상관없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가?
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한다. (말씀)
환경을 보면서 합리적으로 이성적을 따져서는 하나님의 뜻을 볼수 없다.
어려울수록 환경에서 합리성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한다.
개인을 향한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우리는 거진 반은 성공한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곳에 우리의 열정과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아야한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기쁨과 열매과 영광이 있다.
내 가는 이 길에 그분의 뜻이 있는지 먼저 점검해야한다.
그것이 시작점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
지금 우리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갈수 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가?
이것을 알수 없는가?
우리는 영원히 광야에서 열심히 살아야한다.
열심히 살지만 결과는 광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수만 있다면 우리는 가나안의 소망이 있다.
2. 믿음의 고백이다. 말이다. 말로 하나님 앞에 확증해 드려야한다. 내 믿음을 말로 증명해 보여야한다. (말)
사람을 만날때, 기도할때, 공적으로 사적으로 내 믿음을 말로 확증해야한다.
[롬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지만 의는 구원으로 가야한다. 그 구원은 입으로 말로 고백할때 얻을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는가?
[빌2: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은 믿음을 확증하는 확실한 능력이 있다.
내 입에 내 말에 세례를 주어야한다.
거룩한 말로 내 평생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광된 영적 가나안을 볼수 있어야한다.
3. 그리고 그 말에 맞는 순종, 믿음에 맞는 순종을 드려야한다. (삶)
말씀과 말과 삶이 하나로 연결되어 그분의 뜻을 내 뜻으로 여기고 갈때
하나님은 패배없는 인생을 허락하신다.
억지로 갈것인가?
뜻을 알고 기쁨으로 갈것인가?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가게 하신다.
그러나 억지로 갈것인지 기쁨으로 갈것인지가 오늘 남은 숙제이다.
4. 하나님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증거로 말의 고백을 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신다.
하지만 말로 거역한자는 결단코 그 소리를 듣지 않으신다.
싸워도 그중에 계시지 않고
울어도 그 눈물을 외면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내 믿음의 얼굴인 말로 믿음을 증명할때 하나님은 모든 갈길에 동행자가 되시고
먼저 앞서 행하셔서 길을 예비하시고,
구름과 불로 우리의 삶에 동행하신다.
우리의 체온을 아시는 주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하여 적절하게 정확하게 걸음을 인도하시는 축복을 주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