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습관>
과연 오 천명이 가진 것이 오병이어만 있었을까요?
가진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병자도 고치시고 말씀을 종일토록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자만 오천이 넘는 사람들이 가진 것이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밖에 없었을까요?
있어도 내 놓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이 하루 종일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았고,
예수님이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예수님을 경험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작은 음식을 내 놓지 못합니다.
겨우 오천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의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왜요? 왜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지 못할까요?
한끼 식사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끼의 식사는 자신의 삶을 생명처럼 여기기 때문에 예수님의 병 고침을 눈으로 보고
놀라운 말씀을 종일토록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생존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생존의 습관>은 <한끼 식사>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삼 년 육 개월을 연습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사 십 여년 동안 훈련 받은 유일한 한가지는 생존의 습관의 변화입니다.
한끼의 식사를 주님이 주신다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만이
갈멜산에도 가고
요단강도 건너고
여리고성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한계를 넘지 못하면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내 삶에서 경험하기는 힘듭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의 공포입니다.
그 죽음의 공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끼> 식사를 나누는 <습관의 변화>입니다.
놀라운 비전,
놀라운 꿈,
놀라운 헌신은 말하지만 한끼 식사는 내 놓지 못합니다.
죽음의 공포 때문입니다.
생존의 습관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듣고 기적을 보더라도 내 생존의 습관은 바뀌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천명이 예수님과 함께하지만 생존의 습관이 변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내 것을 내 놓아 함께한 모든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기적입니다.
그것은 내 것을 내 놓는 생존의 습관이 바뀔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한끼 식사를 내놓는 생존의 습관의 변화가
예수님의 예수님 되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한끼 식사로 나를 살릴 것인지
한 끼 식사로 예수님을 드러낼 것인지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꿀 것은 좋은 설교와 좋은 교회가 아니라
내 <생존의 습관> 입니다.
예수님은 변화된 내 생존의 습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것입니다.
오 천명 중에 한 명 찾기 어려운 일!
<생존의 습관> 이 변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스피소목사님의 침대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급한 대로 내 것을 줄까 고민을 하다 이것도 너무 오래되어서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고민하다
마침 좋은 가격의 침대가 나와서 도움을 주시고 싶어하셨던 집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도움을 주시면서 혹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하시는데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요!
어디 자신의 가정에,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이 없겠습니까?
자신은 오래된 가구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이 마음 주시는 곳에 순종하는 이 모습을 통해
감동을 받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부탁을 잘 하지 않는 나지만
마음의 감동이 오는 대로 헌신하시는 이분들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그리고 현장에서 사역하는 사역자에게 용기와 격려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주께서 변화된 생존의 습관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삶에 오병이어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