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응답과 싸우고 있다>
하늘만큼 높아질 바벨탑의 기술과 힘을 가지면 인간은 늘 하나님을 대항한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말씀한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형편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은 그 응답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장 걱정한 한가지는 더 나은 형편이다.
왜냐하면 더 나은 삶의 질은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첫마디를 천국의 조건인 심령의 가난함으로 말씀하셨다.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을 떠난 시기는 언제나 그 세대에 있어서 가장 호화롭고 발달된 사회였다.
우리의 기도는 늘 최고의 자리를 향하고 그 자리에 올라서면 늘 하나님을 떠난다.
우리의 기도가 더 나은 어떤 것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함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가난하면 한 개인이 하나님을 떠날 수 있지만 부하면 온 시대가 하나님을 떠난다.
그래서 그 시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대가 발전하고 부하게 되면 되면 어김 없이 마음의 가난함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은 멀어진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떠난 시기는 가장 편하고 부할 때 일지 모른다.
부하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가난함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천국이 열리는 길은 심령의 가난함인데
이미 이 시대는 너무 편하고 부해서 스스로 절제하고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천국의 삶은 자꾸 멀어진다.
내 삶의 넉넉함을 잘라내고 내 삶의 편안함을 거부하고 더 불편하고
더 절제하며 살아야 할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늘 가난할 때가 아니라 시대가 발전하고 형편이 나아질수록 하나님을 떠났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오늘도 형편이 나아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내 신앙이 없어서라기 보다 하나님이 필요 없어도 잘 살수 있는
이 시대의 편안함과 부함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편안하고 인간 중심의 문화와 싸우게 된다.
우리는 지금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한 우리의 기도 응답의 열매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