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들어야 산다>
한국교회가 다들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다들 인식하고 공감하고 아파하는 문제다.
그런데 정작 네 문제라고 말하면 싫어한다.
회개하라고 말하면 욕하고 돌을 던지려 한다.
아파서 아픈 이유를 말하고
문제가 생겨서 병명을 말하면 회개가 아니라 돌을 든다.
소독약 몇 방울,
반창고 몇 개로 회복될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반성하고 철저히 고백하고 철저히 바꾸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문제라고 말하면 일단 듣자.
순종하라고 말하면 일단 순종하자.
아파도 힘들어도 자존심 상해도 지금은 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 살 속, 뼈 속 깊게 물든 세상적 병들을 낫게 해야 한다.
다들 문제라고 말하는데
정작 네 문제라고 말하면 등을 돌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 문제를 말하면 박수를 친다.
나 조차도 목사의 문제라고 하면 화가 난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껏 목숨 걸고 살았는데…
그래도 들어야 한다.
내 문제고 내 병이고 내 실수라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래야 소망이 있다.
정작 병이 들면 자신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마 병이 깊은 모양이다.
치료의 대상은 <네>가 아니라 <나>다.
문둥병의 증상은 손가락이 잘려도 아픔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형제가 아파도 아픔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내 영혼이 문제가 생겨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둥병 말이다.
귀신이 들려도 본인은 모른다.
귀신이 안에 있으면 모르지만 귀신이 나가면 그때야 인식을 한다.
우리는 다들 병이 깊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들어야 한다.
들어야 말씀이 들리고 말씀이 들려야 고치고 믿음이 자란다.
듣지 않으려 하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발 들어야 한다.
들어야 산다.
문제는 조금만 지루하면 견디지 못하고
조금만 심각하면 짜증을 내고
조금만 영적이면 외면을 하고
조금만 부담되면 도망간다.
그만큼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들어야 산다.
믿음은 오직 들음에서 온다.
우리가 살 길은 듣는 것이다.
제발 들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