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험>
신앙의 훈련은 물질의 훈련까지 가야입니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그 기본 위에
물질을 어떻게 잘 나누느냐가 신앙의 본질적인 훈련입니다.
그러나 물질의 실상은 사랑의 훈련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은 물질입니다.
그에게 신앙의 마지막 턱걸이는 물질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내 놓는 목적은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는 전제입니다.
물질은 사랑의 대상이 나타나야 가능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잘 해도 결국 이것이 안되면 넘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영생과 연결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는 물질이 하나님을 대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성경에 관한 다른 지식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물질에 대한 훈련은 말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영생에 관한 문제인데 말입니다.
사단은 물질에 관하여 말하면 속된 사람, 나쁜 목사로 여기게 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마지막 훈련이 되지 않으니 우리 모두는 늘 마지막에 넘어지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지 못하니 배우고 훈련하지 못합니다.
사단의 마지막 무기는 죽음이지만 돈을 죽음처럼 여기게 합니다.
물질이 교회로 모이게 하니 오해합니다.
여러분의 창고를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여십시오.
십일조를 제외한 헌금의 반만이라도 가난한 이웃, 섬겨야 할 사람들에게 나누십시오.
그럼 모든 부분에서 훨씬 자유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왜 더 헌금 합니까?
물질적으로 더 복 받기 위해서 하는 우리의 본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것, 그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물질이라는 마지막 시험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다들 이 마지막 시험 앞에 걸려 넘어집니다.
나는 이것을 훈련시키고 가르쳐야 하는 목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위해 먼저 목숨 걸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넘지 않으면 이 시대는 아무도 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는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마지막 시험 앞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목숨 걸고 먼저 넘어야 합니다.
이리 떼 앞에 먼저 걸어가는 목자와 같이 말입니다.
물질이 마지막 시험이 아니라 실은 사랑이 마지막 시험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도 물질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이기 때문에 물질을 넘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이 넘지 못한 것은 물질 아니라 실은 사랑입니다.
가난한 자들,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말입니다.
용서와 사랑을 알지 못하면 물질은 평생 내 놓지 못하고 시험이 됩니다.
물질을 넘지 못했다는 말은
아직 세상보다 더 큰 사랑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직 마지막 시험대 앞에 있습니다.
물질보다 사랑이 크다는 <마지막 시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