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험한 존재입니까? >
요셉이 죽을만큼 힘든 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친형제가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모세가 힘든 것은 동족을 위해 사람까지 죽였는데 나도 죽일꺼냐고 몰아붙인 동족이고
모세가 죽을만큼 힘든 것은 적인 애굽 왕 바로가 아니라 돌을 들고 소리치는 동족들입니다.
다윗을 힘들게 한 것은 적장 골리앗이 아니라 적장에도 나가지 못하게 한 형들이었고
다윗이 결국 쫓겨 난 것은 자신의 가족과 부하들입니다.
참 선지자를 힘들게 한 것은 같은 선지자들이었고
바울을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의 사도성을 믿지 않던 성도들이었고,
예수님을 죽인 것은 제자였던 유다와 같은 하나님을 믿던 리더들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형제들을, 나의 동족들을, 나의 동역자들을, 나의 사람들을
세상보다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때로 힘든 것은 세상으로 받는 고난과 핍박이지만
정작 힘든 것은 같은 동족으로부터 애매히 받는 고난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11:26]
나는 동족으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고,
형제들에게 거짓됨으로 위험한 존재는 아닌지 걱정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거룩한 구원의 항로에 내 의로운 명분이 위험한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도, 모세와 함께한 장로와 리더들도,
다윗의 가족들과 부하들과, 같은 선지자들도, 예수를 믿던 초대교회 성도들도
다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큰 뜻을 거스르는 위험한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모르는 우리의 무지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이
도리어 나는 형제에게 <위험한 존재> 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고 놀라운 뜻을 모르면서 내 생각이 맞다고 우기는 사이에
나는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위험한 존재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물줄기를 거스르는 위험한 존재 말입니다.
목숨 걸고 달려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위험한 존재로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해야 하고 또 겸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복음 앞에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격려하며 함께 하는 <사랑의 존재> 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안이 아니라 나의 대안을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위험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대안도 어떤 말씀도 순종하지 않는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의 대안만을 붙드는...
바울은 그런 사람을
강도의 위험과
바다의 태풍과 동급으로 언급합니다.
위험한 존재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