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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전에 엄마가 발을 절었다.

장사를 하는 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발을 삐끗한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발이 심각했다.

병원을 가지 않고 겨우 파스를 바르며 시간이 갔다.

한동안을 엄마는 발을 절며 다니셨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발이 낫고 이야기를 나누다 다친 이야기를 하셨다.

오토바이에 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토바이에 치었나고 물어보니

아침에 내가 학교를 나간 후에 책상을 보니 연필통을 두고 갔다는 것을 아셨고

아들이 학교 가서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을까 그것을 들고 필사적으로 뛰셨다는 것이다.

만치 차를 타려는 나를 보고 달리는데 오토바이가 엄마의 발을 밟고 지나가는 통에

엄마는 넘어지셨단다.

한마디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는 차를 타고 가는 아들이 가져가지 못한 연필통을 쥐고 아들이 학교에서 혹여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자신의 아픔보다 그것이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때문에 엄마가 다쳤다는 것을 알까봐 다리를 절며 지내시면서도 말씀을 하셨고

다리가 낫고 후에야 엄마는 내게 그것을 말씀하셨다.

 

벌써 30 고등학교 일이다.

평생을 살면서 힘들단 이야기 한번 하셨다.

짜증 한번, 살기 힘들단 이야기 한번 하셨다.

 

2-30 동안  시어머니, 친어머니 아버지 병수발에

바닥에 앉아 장사를 하시며 집안 살림 홀로 꾸리시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려드는 피곤과 잠을 쫓아내시며

내가 12시에 들어와도 밥상 차려 아들을 기다리시던 어머니다.

 

혹여 잠이 들면 잠깐 누웠다고 그렇게 미안해 하셨다.

다른 부모처럼 용돈을 달라고 한적도,

집안에 뭐가 필요하니 도와 달라는 말도 평생 한적이 없다.

 

그저 아들이 힘들까,

그저 짐이 되지 않을까,

좀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는 마음으로 지금껏 엄마는 그대로다.

 

죽을만큼 힘든 살림에 아들 직장에서 받은 첫월급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니

신앙 없었던 엄마 좋을 대로 하라고 하신 엄마다.

평생 아들보고 살았는데 공부 마치자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하니

동네 소리를 치고 안된다고 할만한데

하나님 위해 일하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기뻐하시고 가라고 하시며

돌아서서 눈물 삼키시던 엄마다.

 

아들 돌아오기를 물어 보실만도 한데

행여 아들 가슴 아플까 지금껏 아무것도 묻는 것이 없다.

 

선교사는 몸으로 사역을 한다.

그런데 선교사의 엄마는 가슴으로 사역을 한다.

아니 눈물로 사역을 한다.

 

선교사보다 더한 선교사

우리 엄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