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후 예수님의 사역원리4>
용서의 다른 이름은 섬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다른 이름은 용서입니다.
용서가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라는 이해와 공감이 먼저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 앞에 제자들의 모습은 다 두려워하여 도망하였습니다.
부활 후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진다고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꾸짖던 베드로를 꾸짖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불을 피우시고 고기를 구우십니다.
책망과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하여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용서를 섬김으로 풀어내십니다.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제자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약함을 아시고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는 예수님의 목자된 마음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를 치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예수님은 흩어짐의 이유를 양들의 책임이 아니라
목자의 쓰러짐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부인하고 외면하고 도망을 해도 그럴 수 있다는 공감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 약함을 식탁의 초대로 그들의 약함을 덮으십니다.
용서의 길은 이해와 공감이지만,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 나의 쓰러짐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용서를 말하지만,
용서 이전에 그들을 이해하고 약함을 공감하는
<목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하지만 그 요구들의 기초는 바로
목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과 쓰리짐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향한 책망이 아니라
참 목자를 잃어버린 쓰러지고 방황하는 영혼에 대한
목자의 마음으로 우리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해도 목자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이해와 공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설 수 있는 기초입니다.
십자가는 사명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죽음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약함을 이해하고
십자가는 우리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공감하고
자신의 한계와 전진하지 못하는 연약함에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준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에 주신 것은 사명만이 아니라
그분이 함께 하겠다는 위로입니다.
혼자 살고자 하는 자가 취한 것이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런 인생에게 찾아온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 인생에게 주님은 함께함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시는 주님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역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부활 후에 기적이 아니라 <목자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사명으로 초대 되는 것은 이해와 공감의 용서의 식탁을 통해
<목자의 마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명의 시작은 목자의 마음,
용서와 섬김의 목자의 마음을 경험하고 얻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비판의 칼과 책망의 무게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목자의 마음>을 구합니다.
그것이 부활 후 예수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에게 베푸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역의 원리이고 삶의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