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가장 약한 한가지> (시편 29편)

<가장 약한 한가지> (시편 29편)

 

 

 

 

 

 

 

 

 

 

<가장 약한 한가지> (시편 29편)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서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내용은 자신의 사도적 정통성입니다.

이유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것을 사도적 요건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후에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의 사도적 정통성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거의 모든 서신서에는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이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반대적 의견이 있기에 자신을 증명하는 말씀을 기록합니다.

 

오늘 시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따라다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

.

첫째, 그것은 우상문제 였습니다. 

 

오늘 시편 29편은 위대하고 웅장한 시입니다.

읽어보면 바로 느끼는 이미지는 천둥과 번개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과 대조되는 가지가 나옵니다.

 

<백향목>

시편 29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대표되는 것은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는 오늘 시편에 무려 6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여호와의 소리가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굉장한 하나님의 소리를 통해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첫번째로 들고 나온 것은 백향목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29:5)

 

하나님의 영광과 대비되는 첫번째 대상은 레바논 백향목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 부순다고 노래합니다.

백향목은 삼나무입니다. 당시에 가장 좋은 목재이고 번영과 영광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백향목의 특징은 가나안의 힘의 상징입니다.

중에 가장 좋은 나무는 레바논 백향목이라는 말입니다.

가나안을 상징하며 대표되는 부와 힘의 상징은 바로 백향목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는 여호와의 소리가 바로 가나안의 상징인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고 부순다고 기록합니다.

 

<레바논과 시룐>

레바논은 원어의 뜻이 흰산이라는 뜻입니다. 석회암으로 이뤄진 산인데 높이가 1900미터 가까이 됩니다.

레바논 산은 산맥으로 이뤄진 곳에서 가장 높은 산을 의미하며 가나안 사람들이 자존심과 같은 곳입니다.

시룐은 헬몬산의 다른 이름인데 높이가 2815미터입니다.

레바논과 마찬가지로 시룐도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힘과 자존심으로 여기는 산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호와의 소리가 레바논과 시룐을 들송아지처럼 뛰게 만든다고 기록합니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29:6)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힘과 영광의 상징인 레바논산과 시룐산을 여호와의 소리로 날뛰게 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가데스 광야>

학자들은 가나안 지역을 의미한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신다고 다음 구절은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29:8)

 

추측하건데 광야와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지나온 세월과 지금 거하는 곳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고 어디에 계십니까?

 

<홍수 앞에 앉으심>

하나님은 홍수 때에 영원한 왕으로 좌정 하셨다고 하십니다.

 

"여호와에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29:10)

 

여기서 기록된 홍수는 일반 홍수가 아니라 노아의 홍수에 사용된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 영원한 왕으로 앉아 계심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문제는 바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 대한 문제를 평생 아니 역사 대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만이 하나님이고 다른 신들은 하나님과 게임이 된다는 것을

자연 현상을 통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끊임 없는 요구>

아브라함을 불러 내실 때도 우상의 집안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굳이 우상의 집안에 아들을 불러 내셨을까요?

하나님은 애굽에서 불러 내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을 주실 때에 일계명으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전쟁의 모든 기회에 하나님은 모든 우상을 파괴하라고 하셨을까요?

가나안의 모든 우상을 멸하라고 하며,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섬기든지 다른 신들을 섬기든지 택하라고 요구했던 것일까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는 싸움은 우상과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따라다닌 그들의 문제입니다.

 

.

.

둘째,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성은 끊임 없이 우상을 찾았습니다.

가나안을 차지한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라는 신은 전쟁에 능하신 신이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한다는 본성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살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이유는 풍요의 신으로 대변되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바알은 손에 번개를 들고 바람과 비와 번개를 몰고 다니는 신으로 여겼습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그들의 변화된 삶에 그들이 의지 것은 바로 농사를 주관하는 신인 바알이 당장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이 여호와의 소리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영광과 대조 대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먹고 사는 문제,

좀더 사는 인생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우상으로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가진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한가지 입니다.

좀더 사는 것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결국은 내가 자리에 앉아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버릴 있고,

나를 전쟁에서 이기게 하나님도,

나를 종에서 구원한 하나님도 얼마든지 버릴 있는 본성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 상향성>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상향성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어떤 존재와 힘을 찾습니다.

끊임 없이 높아지려는 마음에 내가 밟고 올라갈 있는 어떤 존재도 우상으로 만들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기도도 이용하고,

설교도 이용하고,

헌신도 선행도 이용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기도도 우상이 되고,

설교도 우상이 되고,

능력 힘도 우상으로 만들어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존재가 우리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통해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의지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을 부수는 것입니다.

홍수를 통해 세상을 쓸어 버림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오늘 시편입니다.

 

우상을 세우는 목적은 한가지 입니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사는 것을 위해 하나님을 얼마든지 버리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세포세포 속에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이 되고픈 욕망과

먹고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것이 사단이 넣어준 죄의 본성입니다.

시편 29편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그것을 깨고 부순다고 노래합니다.

.

.

셋째, 우리의 존재

 

1절에 권능 있는 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세상이 자랑하는 어떤 힘과 능력도 엎드려진다고 말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도 기룐도 가데스 광야도 세상도 홍수로 엎드려 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29:11)

 

<힘을 얻는 존재>

 

먹고 살기 위해 우상을 만든 세상은 깨뜨리시지만

여호와를 왕으로 인정한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 더하신 다고 노래합니다.

그럼 누가 그분의 백성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로 우상을 만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 힘을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세상에 좋은 것을 택하고

내가 먹기 위해 세상에 화려한 것을 붙들고 사는 인생이 아니라

호흡하며 생명주신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붙들고

비록 초라하지만,

비록 아무것도 없지만,

능력이 없으면 없는대로

무능하면 무능한 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힘을 주신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평강의 복을 누리는 존재>

 

힘과 함께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평강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먹기 위해 가지기 위해 우상을 섬깁니다.

그곳에는 가질 수는 있지만 천국 백성만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만 누리는 평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그분의 사람들에게만 주셨던 것은 평강입니다.

세상은 누림으로 높아지지만

우리는 버림으로 평강을 누립니다.

 

살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는 곳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먹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곳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오직 하나님으로 힘을 삼고 사는 백성에게는 세상에 없는 한가지

생명의 평강이 있습니다.

 

세상과 우리가 다른 한가지는 우리 안에 평강이 있느냐 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느냐 입니다.

돈이 있어서 평강이 아닙니다.

세상의 권력과 힘이 있어서 평강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명한자 같지만 유명한 자고

아무것도 없는 같지만 가진 자이고

죽은 것처럼 살지만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고

징계를 받는 같지만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하는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 하나님의 평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존재들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고 싶은 가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오늘 시편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른 것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만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약한 것은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돌로 떡을 만들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법을 어기고

사람들이 욕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길이 우상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망하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좀더 살기 위해,

좀더 커지고 좀더 높아지기 위해 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가장 약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연을 통틀어 노래하며 말하고 싶은 시편 기자의 한마디는

제발 먹고 사는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붙드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백성으로 자녀로 부르셔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

하나님 자신이 아들과 성령을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없는 평강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만으로 우리 충분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외에 요구하는 모든 것은 죄고 우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반대는 배를 먼저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약한 우리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먹고 사는 것을 맡길 찾아 것입니다.

 

 

 * 몬스트로노스 교회 마을인 소볼로에 교회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텐트 부흥회를 주에서 2-3달을 하는 저희 선교전략으로

텐트를 치고 매일저녁 부흥회를 합니다.

 

그런데 신실한 주의 일군은 허허벌판 달랑 텐트를 이곳에서

매일 홀로 밤을 지새웁니다.

혹시 도둑이 텐트와 집기들을 훔쳐가는 일들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자꾸 이불에 마음이 갑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하루 종일 노동에 피곤할텐데

세상에 좋은 버려두고 홀로 외로이 텐트를 지키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밤을 지새는 인생이 너무 거룩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상을 이렇게 지내는 헌신과 섬김에 입이 벌어집니다.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저희 선교지 교회들이 이런 시간을 지냅니다.

 

선교사지만 그들의 거룩한 헌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낡아빠진 곤로에 색이 바랜 이불이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저들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축복을 나를 통해 해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사역자를 위해 미리 준비한 드럼 세탁기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밤을 새는 집사님에게 무엇을 드릴까 혼자 기분 좋은 상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먹고 사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축복임을 아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기다려야 하지만 그들을 만날 날이 기다려 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분의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적용-

 

1.사람마다 약함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 어떤 이는 건강, 어떤 이는 이성문제, 어떤 이는 관계문제 등등

나에게 따라다니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2.우리가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나를 증명하려 합니다.

내가 내려 놓아야 하는 우상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3.우리의 존재 증명은 평강입니다.

안에 하나님으로 인한 평강이 주어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있습니다.

평강을 위해 기도하고 평강을 막고 있는 것을 내려 놓도록 기도로 결단하기 바랍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