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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광야에서…>

 

 

 

 

 

 

 

 

 

 

<광야에서…>

 

성도들은 삶에 지쳐 눈물을 흘릴 힘도 없는데…

우리는 그저 공허한 신학적 논리와 이론에 갇혀 그들의 처절히 흘리는 눈물을 보지 못한다.

 

그들의 삶의 현장을 보지 못하면 그들의 눈물도 보지 못하고

겨우 살아내는 삶의 아픔을 보지 못하면 그들을 위해 외치는 소리는 자장가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외치는가?

그들의 무너진 마음을 알지 못하니 

우리는 늘 허공을 외치는 공허한 말씀만 남발하고 있다.

 

이 땅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첫 걸음은 <내려오심> 이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유는 그들의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심>이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양들을 살리는 길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신음소리가 내 가슴을 채찍질하며 할퀴는 통곡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에 응답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눈물에 민망히 여기는 창자의 울분을 가졌는데

수 없이 전하는 소리는 눈물을 향한 공감이 없고

수 없이 외치는 설교는 주님의 민망함이 없으니

나의 소리 나의 설교는 울리는 꾕과리가 된다.

 

그들을 향하여 수없이 외치는 소리는 있는데

처절히 흘릴 피가 없어 아파하는 양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들리지 않는다.

 

고역으로 노동으로 삶에 지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가 들릴 때

나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고

그들의 삶의 짐을 함께 지는 참 목자가 될 수 있다.

 

언제 교회가 함께 웃고 언제 교회가 함께 울 수 있는가?

그들의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의 소리가

내 가슴에 북소리처럼 들릴 때 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내 가슴은 아직 소리 없이 흘리는 그들의 눈물이

북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 홀로 광야에 있나 보다.

 

내 사명의 첫 걸음은 우뢰 보다 강하고 하나님의 보좌도 움직이는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홀로 외로이 죽어가며 살려 달라며 소리 없이 외치는 통곡소리가

내 가슴에서 심장 소리보다 크게 들릴 때이다.

 

하나님은 백성의 통곡과 신음소리가 심장소리 보다 커서 모세를 보내셨고,

예수님은 그래서 자신의 심장소리보다 더 큰 그들의 신음에 자신의 모든 피를 다 주셨나 보다.

 

그들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

천지보다 더 크게 그들의 아픔이 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홀로 광야에서 첫 걸음을 떼지 못하나 보다.

내 소리보다 그들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

내 사역의 첫 걸음은 시작 되려나 보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