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2>
<진리> 의 몸에 <문화> 의 옷을 입혀야 합니다.
진리가 없어서 교회가 교회 다워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어떤 문화의 옷을 입히느냐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역자 개인의 역량을 보면 탁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박한 지식에 탁월한 학력과 설교의 능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여러 부분에서 역동적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에 노출되어 불필요한 갈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또 어떤 교회는 사역자의 역량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성장의 요인이 사역자 개인에게는 없다 싶은데 교회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런가를 많이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첫째, 그것은 공동체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 위에 그 공동체가 가진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떤 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공동체적 문화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들과 관계나 일을 해 나갈 때 그 공동체가 어떤 방법으로 풀어 나가느냐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문화입니다.
그런 문화는 공동체의 색깔이 결정되고 교회의 정체성이 결정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특징은 한 사람의 리더쉽에 집중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만 쳐다보고 한 사람에 집중된 교회 문화로 이루어진 기초는 한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이라고 비유되는 씨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와 말씀의 씨가 뿌려질 때 그 씨앗을 받아 들이는 공동체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토양입니다.
토양의 체질변화가 중요하며 그 체질의 변화는 결국 <문화>로 꽃을 피웁니다.
자 각자 공동체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각 공동체는 특유한 문화가 있습니다.
진리는 아니지만 진리처럼 여겨지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 문화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교제하고 나누며 섬기는 분위기가 되어 있는 공동체라면
성장과 건강함을 유지하지만 좋지 않은 문화를 가진 공동체는 부정적이며 하나님의 일들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가집니다.
자 예를 들어 모세는 광야를 나오고 난 후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비전과 진리가 있지만 그 공동체의 문화는 모두 모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모세를 향하고 모세의 판정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모든 문제의 책임은 모세가 지게하고 일이 풀리지 않는다 싶으면 돌을 들고 고함을 치는 문화입니다. 늘 불평 불만이 가득한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는 모세 한 사람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죽게도 하지만 결국 잘못된 문화 때문에 그 공동체도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통해 그 시스템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었습니다.
좋은 리더를 세우고 작게는 열명 많게는 천명씩 감당하는 사람을 세워
그 공동체가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만든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둘째, 그래서 진리의 몸에 <좋은 문화> 라는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칭송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호감>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즉 공동체가 가진 독특한 문화에 세상 사람이 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습니다.
공동체 상호간에 어떤 생활적이며 신앙적인 문화의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안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시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토양 즉 체질을 바꾸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하신 일입니다.
어떤 일과 비전이 주어질 때 자신을 헌신하고 남들보다 앞장서서 섬기는 문화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체질 즉 문화를 바꾸지 않고
자꾸 말씀만 전하고 개인의 탁월함만을 바라보고 개발한다면 그것은 큰 시각으로 볼 때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지는 시스템과 문화 때문에 교회가 큰 고통을 겪는 것은 쉽사리 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바뀐 모세를 받아들였습니까?
아닙니다. 40년을 죽도록 고생해서 바뀐 모세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더 고함치고 돌을 들었습니다.
죄의 속성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않는 것이 죄의 습성입니다.
모세가 아니라 다윗이어도 결국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죄의 습성입니다.
자신의 죄됨을 보지 않고 늘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문화는 좋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한 리더의 탁월함을 바꾸셔서 일하시기도 하지만
그 공동체의 체질 즉 좋은 문화를 만드셔서 교회를 세워 가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담임목사 정도 되려면 외국 물도 좀 먹고 영어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고 설교도 탁월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어디 목사만 그렇습니까?
중직자는 적어도 돈이 많아야 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중직자 정도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묵시적 문화가 있습니다.
이런 교회 안의 문화들을 세상에서 말하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문화일까요?
욕을 먹고 돌을 던질 문화일까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 안에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잘못된 옷을 입혀 놓으니 진리가 욕을 먹는 것입니다.
새가족이 오면 어떻게 환영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축하를 하고,
교역자를 대하고 담임목사를 대하는 모든 것이 그 교회만 가지고 있는 특유한 문화입니다.
진리라는 몸에 문화의 옷을 잘 입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각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문화를 찾아 그 문화를 바꾸는 것이
훨씬 복음이 복음 되는데 빠르고 좋은 길입니다.
한국 교회는 한국 교회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그 문화는 좋은 것도 너무 많습니다.
성도들의 특별한 관계와 교역자를 향한 사랑과 섬김,
일단 은혜를 받으면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좋은 문화로 정착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르게 성장하는데 발목을 잡고 있는 여러 안 좋은 문화가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믿지 않는 교인에게 말했을 때 그들이 칭송을 하지 않고
호감을 갖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좋지 않은 문화입니다.
믿지 않는 자도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는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 문화를 바꾸지 않는 이상 진리가 진리로 빛을 발하는데 너무 어려운 것을 봅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 진리를 잘 알고 따라야 하지만
진리에 따른 좋은 교회 문화를 개발하고 바꾸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들을 더욱 귀하게 감당하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각 공동체가 좋은 문화를 세우고 만들어 더욱 귀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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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있는 축호 전도 즉 가정을 방문해서 전도하는 일이 남아공에는 잘 없습니다.
알고 지내는 선교사님 한 분이 왜 이 나라 사역자들은 집집마다 방문해서
전도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선교사님 보시기에 가만히 있는 것 같은 사역자들이 안타까우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선교에 대한 복음의 열정은 너무 귀한데 이 나라의 문화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는 약속 없이 불쑥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은 상당히 예의 없는 일로 여깁니다.
그들이 어떤 진리를 전한다 할지라도 약속도 없이 말도 없이 집을 방문해서 전도를 하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않고 예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강도와 도둑에 노출된 삶을 살다 보니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집을 찾아 오고
집 앞을 서성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방문을 할 때는 교인을 통해 서로 아는 이웃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문화를 알지 못하니 복음을 전하는 것도 문화의 충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 현지 교회는 1-2 주의 텐트 부흥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그 시간을 계기로 초청하고 만남을 가집니다.
저희 사역지 교회들은 일년에 4번 있는 방학을 이용해 텐트 부흥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결신자들을 방문하고 결신자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문화의 차이입니다.
어떤 문화로 접근하고 어떤 문화가 교회 안에 있느냐가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로 성장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생각해보면 교회 안에 여러 문화가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욕하고 싫어하는 것은 어둠이 빛을 핍박하듯 당연하지만
좋지 못한 문화로 괜히 욕을 먹고 복음이 닫히게 하는 일은 일부러 만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10년은 이런 잘못된 문화를 어떻게 좋은 문화로 바꾸느냐가
교회가 성장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 될 것입니다.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은 <진리>를 보지 않고 진리가 입은 옷,
즉 공동체의 <문화>통해 진리를 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