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리더가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훈련하고 단련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만 새로워 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둘째는 새로운 영적인 사람들과 지속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가지는 영적인 영향력은 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첫 번째 일에 목숨을 걸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방법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은 쉽고 간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기존 교회의 리더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홀로 다 해야 한다는 잘못된 책임감 아니면 자신만으로 충분하다는 교만입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전반적으로 보면 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새롭게 들어가거나 교제가 이루어진 곳에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홀로 새롭게 하는 일보다
다른 영적인 사람들과 공동체가 깊이 교제함으로 새로워지는 통로를 늘 열어 놓아야 합니다.
성령은 늘 하나님의 사람들을 교회와 교제하게 함으로 교회에 영적인 힘들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들의 특징은 영적인 사람들과 교제를 제한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 힘이 나고
특히 영적인 사람들에게 노출 될 때 그들의 영적인 영향력을 얻게 됩니다.
당신의 공동체는 이 문제에 대해서 폐쇄적입니까 아니면 개방적입니까?
폐쇄적인 상태가 오래 지속 되었다면 분명 그 교회는 영적으로 힘을 잃어 갈 것이고
그렇지 않고 개방적이며 영적인 영향력에 많이 노출된 공동체는 늘 새로운 바람이 불 것입니다.
설교를 하게 하는 것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곳에서는 삶의 깊이 있는 영향력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심으로 그 공동체의 하나님의 일들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들의 기회나 좋은 사람을 붙여주시지만 변화를 두려워 하거나
다른 어떤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것을 제한 합니다.
셋째, 그 일은 내 자리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사람은 결코 하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의 그릇의 사이즈 입니다.
그릇이 큰 사람이 많은 사람을 품고 함께 가고 좋은 영향력으로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보내시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교제하는 내 그릇을 키우는 일입니다.
늘 자신의 스타일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보내시는 사람에 대해 민감하고 깊은 교제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 교회가 침체되고 제한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홀로 깊은 하나님과의 시간을 가졌던 고넬료가 성령이 보내시는 사람을
받아 들이고 교제할 때 그곳에 강력한 성령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야곱의 기도의 씨름은 결국 원수 같던 형 에서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인지 모르고 나그네를 대접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성경 어느 곳이든 기도의 끝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하나님이 사람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지나게 하십니다.
기도와 성경의 방향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인격적 나눔과 교제입니다.
혼자 붙들고 씨름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깊은 교제로 나아갈 때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쉬운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만남들을 깊은 관계로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시는 만남에 대해 늘 겸손했습니다.
죄의 열매는 <홀로>이고 은혜의 열매는 <함께>입니다.
새롭게 하심의 전제는 만남이고.
<만남>의 전제는 <겸손>입니다.
결국, 그 사람의 <그릇>은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는
<겸손>의 크기 입니다.
.
*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저희들은 불편한 사람들입니다.
남아공은 백인들이 복음을 들고 왔지만 복음을 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앗아갔습니다.
오랜 세월을 그들의 종으로 지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 선교사는 불편한 사람입니다.
감사한 것은 불편한 우리를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저희를 기쁨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것을 받아들인 우리 사역자들은 나름 함께 동역하는 사람을 얻게 되고
함께 교회와 복음을 세워가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현지 사역자가 중국인으로 보이는 저희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희 노회에서는 한국 사람들과 사역을 끊으라는 실제적인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우리를 받지 않았고
함께 동역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사역의 열매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 편에서 하나님의 보낸 사람답게 더 섬기고 수고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그들 편에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열린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일의 크기는 그릇의 크기이고
그 그릇은 겸손으로 사람을 받아 들일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열린 가슴으로 영적인 사람들과
지속적인 인격적 교제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 공동체를 축복하십니다.